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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6.25전쟁 중 납북자 대책은?

1950년에 일어난 6.25전쟁은 북한 인민군의 남침으로 촉발돼 유엔군, 국군과 인민군, 중공군 그리고 남북한 민간인 등에게 막대한 피해를 안겼다.

이 전쟁으로 인한 인명 피해만 봐도 국군 사망자 5만8천여명, 실종자 8만2천여명, 부상자 17만8천여명, 인민군 사망자 18만4천여명, 부상자 22만6천여명, 남한 민간인 사망자 37만여명, 부상자 23만여명, 북한 민간인 사망자 40만5천여명, 유엔군 사망자 3만6천여명, 실종자 6천900여명, 부상자 11만6천여명, 중공군 사망자 18만4천여명, 부상자 71만여명에 이른다.

유엔은 남북한 동족 간에 일어난 이 전쟁에 참전하여 북한을 적으로 삼아 격전을 치르며 정전협정에 의해 3년 만에 전쟁을 끝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6.25전쟁 중 포로로서 북으로 끌려간 국군, 북으로 납치된 민간인들의 안부 확인과 송환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해온 것이 사실이다. 세계적으로 여러 전쟁에 개입한 미국이 단 한 명의 미군 유해라도 확인이 되면 송환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여 성사시키는 미국에 비하면 우리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은 명백히 드러난다.

우리 정부는 1952년에 발행된 ‘대한민국 통계연감’에 납북자 수가 8만2천959명으로 기록된 것을 근거로 이 숫자를 통계자료로 활용해 왔다.

그러나 정부 관리들이 모르는 사이에 6·25전쟁 당시 한국 정부가 납북자를 12만6천325명으로 기록한 외교 문서가 22일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미일 이사장에 의해 발견됐다. 이것은 전쟁 당시 존 무초 주한 미국 대사가 1952년 1월 4일 내무부 자료를 바탕으로 납북자를 12만6천325명으로 기술해 유엔군 사령부로 보낸 문건이다. 이 소식이 언론에 의해 보도되자 통일부 관계자는 “그 자료 좀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냉전시대에는 대화의 창구가 없었으므로 납북자 문제를 제기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남북한 간에 깊숙한 대화가 이뤄지고 남북한 이산가족의 상봉이 진척되고 있는 현재도 우리 정부는 지난 4월 13일 금강산에서 열린 제8차 남북 적십자회담에서 ‘국군포로·납북자’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기로 할 정도로 저자세를 보이고 있다. 대화도 중요하지만 국가의 정체성과 원칙을 분명히 한 대화를 해야 한다. 우리는 6·25전쟁 57주년을 맞은 오늘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빌면서 전쟁으로 납치된 국민들을 소홀히 대접하는 국가에서 국민이 과연 순순히 목숨을 바치려 할 것인가를 성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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