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신문 6월 12일자에 청소년 유해환경 신고 포상금 ‘파파라치 돈벌이에 악용’이란 기사를 보면 경기도내 시·군이 청소년유해매체, 업소, 약물 등 각종 유해환경으로부터 청소년 보호법상 위반행위 신고시 3만~20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하는 ‘청소년 유해환경 신고 포상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신고 포상금을 노린 ‘파파라치’들이 포상금을 싹쓸이하면서 좋은 취지로 시작된 제도의 목적을 무색케 하고 있다고 한다.
경기도의 경우 지난해부터 지난 4월까지 31개 시·군에서 지급된 83건, 415만원 포상금이 단 3명의 전문 신고꾼이 싹쓸이 해갔다고 한다. 이탈리아어로 파리처럼 웽웽거리며 달려드는 벌레를 말하는 이 ‘파파라치’란 용어는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가 만든 ‘달콤한 인생’에서 유래되었는데 주인공인 마르첼로는 부자들의 방탕한 생활을 취재하는 기자였다. 처음에는 유명인사의 사생활에 근접해서 특종사진을 노리는 직업적 사진사를 지칭했었는데 요즘은 사냥꾼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불법과외 장면을 촬영하여 보상금을 받아내는 파파라치, 정치인들을 따라다니며 부정행위를 고발하고 포상금을 받는 표파라치, 쓰레기 무단 투기자를 고발하는 쓰파라치, 공원에서 애견들이 방뇨하는 장면을 찍어 보상금을 받는 개파라치, 하다못해 슈퍼에서 일회용 봉투를 사용하는 것을 빌미로 돈을 뜯는 봉파라치 등 온통 파파라치 세상이다. 게다가 파파라치를 양성하는 전문학원까지 있다니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보다 훨씬 더 치열해진 경쟁속에서 살아남기위해 또한 급변하는 환경을 따라잡기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이유 하나가 모든 수단과 방법을 합리화 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인간답지 못하고 몰가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우리는 과정과 절차의 정당성보다는 목표달성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이웃과 함께하는 공동체의 선보다는 나의 이익과 성취가 더 중요한 목적이 되어버린 척박한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내 몫을 챙기고 내 목소리를 키우기 위해서라면 법과 질서마저 아랑곳하지 않는 세태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지난번 대학입시 때 자신이 지원한 학과의 경쟁률을 낮추기 위해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다른 지원자의 접속을 막았던 학생들이 그다지 죄의식을 가지지 않았다는 보도를 보고 젊은 사람들의 도덕적 황폐에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서라면 규칙을 지키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이들에게는 거부감이 없이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상대적이다. 내가 악착스러워지면 남들도 마찬가지다.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끝까지 추구하기보다는 남의 사정도 어느 정도 생각해보면서 적당히 이득을 취하는 사람이다.
하루는 공자가 승모(勝母)라는 마을을 지나가게 되었다. 공자가 그 마을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해는 저물고 사방이 어두워졌으며 배도 고픈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머물지 않고 온종일 걸어 지친 발길을 재촉하였다. 그것은 ‘승모’라는 마을이름이 ‘어머니를 이긴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공자는 그러한 이름을 가진 마을에서 유숙한다는 것은 자식된 도리로서 어머니에 대한 불경이요 불효라 여겼던 것이다. 까짓것 이름이 뭐가 그리 중요하느냐고 묻겠지만 그러한 정신이 살아있기에 정의가 서고 윤리가 세워지는게 아닌가 싶다.
목적이 좋으면 수단도 좋아야한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과만을 중시하다가는 그때 당시는 무사할지 모르지만 결국 좋은 것이 아니다. 그 옳고 그름은 결과적으로 언젠가는 밝혀지기 때문이다. 남의 허물은 통렬하게 정죄하면서도 정작 자신에게는 관대한 이상한 눈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목마르다고 어떤 물인지도 모르고 마셔대고 피곤하다고 아무 곳에서나 누워 버리면 파파라치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