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사회의 특징을 한 단어로 말한다면 아마도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 도덕 교과서에는 ‘질주하는 세계’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데 참으로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과학 기술의 눈부신 발달로 인하여 이 세계가 급변하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실제로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을 둘러보면 하루가 무섭게 변하고 있다. 어떤 목적으로 어느 곳을 향하는지도 모르는 채 브레이크 없는 전차와 같이 무섭게 질주하고 있다.
현대사회를 대변하는 단어가 ‘변화’라고 한다면 그 이면에 변화에 대처하는 수많은 대안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것을 우리는 읽을 수 있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교육, 사회, 경제, 문화 등 사회의 어떤 분야에도 대안이라는 말을 붙이면 다 통할 정도가 되었다.
변화가 있는 곳에 대안이 있고 문제가 있는 곳에 대안이 있다. 그래서 지금 현재 제시되고 있는 수많은 대안이 변화하는 시대의 참된 진리인 양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대안이 많다는 것이 사회가 발전하거나 성장한다는 것과는 동일하지 않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 해결의 유일한 방안도 아니라는 것도 시사하고 있다. 대안은 변화에 따라 또 다른 대안을 낳기 때문이다.
교육계에는 다른 분야보다도 ‘대안’이라는 말이 유행성 전염병처럼 사회에 번지고 있다. 그만큼 교육계가 급변하고 있다는 증거이고 동시에 교육계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르긴 해도 대안이라는 말이 일반화된 것은 10여 년 전 대안학교, 대안교육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부터 일게다. 우리 사회에 교실 붕괴 담론이 형성될 때 학교부적응학생과 중도탈락자들이 사회 문제가 되면서 이와 같은 교육적 병리 현상에 대한 대안으로 대안학교 개념이 본격화되었는데 그 때가 바로 10여년전의 일이다. 그 이후로 사람들은 걸핏하면 대안이라는 말을 즐겨 쓰면서 그것을 문제 해결의 방편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급기야 정부에서도 대안교육이 지니고 있는 가치와 그 필요성을 인식하고 대안학교를 제도권 안으로 끌여들이려는 노력을 한 결과 지난 6월 28일 ‘대안학교의 설립 운영에 관한 규정’이라는 이름으로 대안학교법 시행령을 발표하였다. 이 규정안이 발표되자 기독교대안학교 진영과 대안교육 진영에서는 규정안의 비현실성을 들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기존 대안학교는 물론이고 앞으로 대안학교 설립을 준비하는 단체나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전혀 되지 못한다고 판단하여 한나라당 임해규 의원 주관으로 7월 11일 국회의원화관에서 대안교육법제화를 위한 정책 토론회를 열어서 새로운 입법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번에 발표된 규정안의 내용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차치하고서라도 기본적으로 기존 대안학교나 대안학교 설립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실망스러운 것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그래도 법 테두리 안에서의 대안적 삶의 가치를 교육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측면에서는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대안교육은 그야말로 새로운 가치와 사회를 지향하는 교육을 의미한다. 그리고 대안교육에 대한 상상력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성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단히 교육개혁적이며 기존의 교육적 이념이나 가치들을 부정하는 경향성이 짙을 수밖에 없다. 교육이 시대정신의 반영이라는 점을 인식한다면 분명히 대안교육은 우리 사회의 교육적 문제를 넘어서 인간 삶 전반에 걸친 가치에 대한 나름대로의 세계관 교육인 동시에 하나의 사회 운동인 셈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대안교육운동에 대해서 ‘대안교육의 정신을 지지하고 있는 세계관은 어떠한가’ 하는 물음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현대인들은 변화에는 민감하지만 변하지 말아야 할 것에는 둔감하다.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변화의 흐름에 몸을 내 맡기고 대안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는 말이다. 결국 우리는 대안을 찾고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변화에 적응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대안교육이라는 측면에서 보아도 사람들이 대안교육 운운하지만 사실은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교육을 하고 있지 않는가?
이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는 대안의 시대에 살고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대안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좀 더 정직하게 말하면 진정한 대안을 발견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대안이 뭔지 모르거나 둘 중의 하나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정말 우리가 우리 시대에서 찾아야 할 것은 대안이 아니라 진리이다.
지금의 시대에는 이런 대안이 필요하고 또 다른 시대에는 그 시대에 맞는 대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대안이 없는 진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상 대안이 없는 사회가 제일 좋은 사회가 아닐까? 진리를 바라보아야 할 시대가 되었다. 우리가 꿈꾸는 사회는 분명 대안이 더 이상 없는 사회이다. 그리고 우리가 꿈꾸는 교육은 대안이 없는 교육이다. 대안이 없어져야 한다. 대안을 찾는다는 것은 새로운 대안을 모색한다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대안은 회복이다. 진리에로의 회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