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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시평]바로크 음악가는 행복을 남겼다

삼대거장 바흐, 헨델, 비발디 불멸의 명작 작곡·역사 이바지
수많은 작품남긴 그들의 열정오늘날 관객들에겐 큰 행운

 

바로크시대의 음악 삼대 거장이 바흐, 헨델, 비발디라는 건 어렴풋이 들어서들 귀에 익을 것이다.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음악가를 꼽는다면 ‘바흐’라고 지칭할 때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바흐는 독일의 오르가니스트 작곡가로서 오늘날 ‘도, 레, 미, 파, 솔, 라, 시’ 음계를 피타고라스의 소리 진동수(‘라’-1초에 440회 진동)와 함께 정확하게 만든 사람이다.

음악문헌 또는 사전에서 보면 바흐라는 음악가만 50여명이 등장하는데 바흐의 가문은 16세기 이래로 중부 독일의 튀빙겐지방을 중심으로 200여년에 걸쳐 50명 이상의 음악가를 배출한 대 음악가 집안이다. 우리가 초등학교 때부터 음악의 아버지라 부르는 바흐는 정식 명칭이 요한 세바스찬 바흐(Johann Sebastian Bach)로 1685년에 태어나 1750년에 사망했으며 65년의 생애동안 셀 수 없이 많은 불멸의 명작들을 작곡했을 뿐만 아니라 자식들 또한 그가 만든 많은 곡수 만큼이나 다산(多産)했다.

바흐는 두 번 결혼했는데 그의 첫 번째 결혼은 22살 때인 1707년이었다. 상대는 그의 6촌 누나인 마리아 바바라(Maria Babara)였는데 그녀와의 사이에서는 7명의 자녀를 낳았으나 그녀가 숨져 16세 어린 소프라노 가수인 안나 막달레나(Anna Magdalena)와의 사이에서 13명의 자녀를 낳았다. 두 부인의 아이를 합쳐서 20명의 자녀를 낳은 것으로 문헌에는 기록돼 있다. 혹자는 문헌에 기록된 자녀가 20명이지만 기록되지 않은 자식 포함하면 30여명은 넘을 것으로 추측하는데 아무튼 평생을 낮에는 음악을 생산하고 밤에는 자식을 생산한 ‘위대한’ 음악가였다.

심성이 약한 차이코프스키(Tchaikovsky)는 제자 미류코바와 결혼했으나 남성적인 그녀가 혐오스러워 자살을 기도하기도 하고 결국은 아내를 버리고 떠나버렸다. 공식적으로 그는 콜레라로 사망했으나 여성 혐오증으로 동성연애를 즐겼기에 에이즈(AIDS)로 사망했을 것이란 이야기가 음악학자들 사이에 나오고 있다.

섬세한 감정을 지닌 음악가들은 이처럼 극단적인 사랑을 했던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쯤해서 음악의 어머니 이야기를 해보자.

누구나 들어본 바로 음악의 어머니는 헨델이다. 정식 이름은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Georg Friedrich H뭉디) 1685년 독일의 할레에서 외과의사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난 헨델은 어릴 때부터 음악을 하고 싶어했으나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법관으로 키우고 싶어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반대에도 음악을 향한 헨델의 열정을 막을 수 없었다. 헨델의 재능은 주위 사람들의 눈에 띄었고, 그들은 헨델의 아버지를 설득해서 헨델은 아홉 살 때부터 F. 차하우라는 오르간 연주자에게 작곡법과 오르간 연주법을 배우게 된다. 그 후 헨델은 이탈리아에서 오페라를 공부하고 훗날 독일의 하노버 궁전에서 악장으로 일했다. 그의 유명한 곡을 보면 ‘에스테르 Eshter’, ‘메시아 Messiah’ 등 그야말로 바로크시대의 진정한 음악의 어머니라 할 만큼 많은 곡을 생산했다. 또 1719년에는 왕립음악아카데미를 설립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으면 당연히 자식이 생기기 마련이다. 비록 비유적인 표현이긴 하기만 음악사를 정리하는 면에서 보자면 자식은 바로 비발디(Antonio Vivaldi)이다.

“1678년 3월 4일 점심때 갑자기 천둥이 치더니 큰 지진이 베네치아를 뒤흔들었다. 그때 나는 비발디를 뱃 속에 갖고 있었는데 집이 마구 흔들리는 바람에 배를 감싸쥘 겨를도 없이 벽에 가서 꽝 부딪혔어요. 그 충격으로 비발디는 그만 칠삭둥이로 태어났죠”비발디의 어머니가 남긴 이야기이다. 이렇게 칠삭둥이로 태어난 비발디는 자라면서 자주 시름시름 앓거나 몸이 늘 허약했다고 한다. 비발디의 아버지 조반니는 산마르코 성당의 바이올리니스트였다. 그런 아버지의 영향으로 비발디는 어려서부터 음악과 친근하게 지낼 수 있었다. 비발디가 10살이 됐을 때에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할 정도로 연주 실력이 뛰어났다.

비발디의 유명한 음악 작품 중 ‘사계’는 4편의 시를 가지고 4계절의 분위기와 색채를 섬세하게 표현한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자, 바이올린 연주자인 그는 40여곡의 오페라를 비롯해 많은 종교적 성악곡, 가곡 등을 남겼는데 기악곡은 음악사에서 특히 중요한 구실을 했다. 유명한 음악가들도 사연과 이유가 많은 가운데 창작활동에 전념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좋은 작품이 잉태돼 연주자들에 의해 편안하게 좋은 연주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우리 관객들에겐 행운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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