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나는 인천 연수동에서 구월동까지 출·퇴근을 하고 있다.
농산물 도매시장을 지나 보훈청 입구에 다다랐을때 버스가 신호에 걸려 창밖을 무심코 내다보았다.
그때 횡단보도 앞에서 초록색 불을 기다리고 있는 몸이 불편한 한 남자에게 시선이 멈췄다.
작은 수레에 폐지를 가득 싣고, 서늘한 바람이 부는 날씨임에도 그는 마비된 손으로 연신 땀을 닦아내며 절룩거리는 다리로 신호가 바뀌기 전에 건너가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옆에는 남동경찰서로 출근하는 듯한 건장한 남자들도 몇 있었는데 누구하나 도와주는 이가 없었다.
장애인인 그 남자도 집에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생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나왔을 터이다.
사회보장 수급자로 가만히 있어도 생활보조금이 지급되겠지만,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가장의 책임을 다하고자 함이리라. 시선따윈 아랑곳 하지 않은 채 말이다.
가끔 우리 주위에는 멀쩡한 육신을 갖고도 변칙으로 수급대상이 되려는 사람이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제출한 지난해 기초생활수급자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64억원의 재력가가수급자로 선정돼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과 달리 불편한 몸에도 일하려고 노력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가슴한켠이 뭉클해진다.
17대 대선이 석 달 앞으로 다가왔다. 본선에 진출할 1명의 후보자를 이미 뽑은 정당도 있지만, 일부 정당에서는 경선이 한참 진행 중으로 10월 중순이면 그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이미 민생탐방이라는 이름으로 일찌감치 본선을 준비하는 후보들도 있다. 청소 더미 속에서 애써 해맑은 미소까지 지어보이며, 서민의 삶속에 용해돼 보려 하지만, 어설픈 리허설 같아 보는 이로 하여금 씁쓸함만 자아내게 한다.
어찌됐든 국민은 앞으로의 5년을 우리 눈높이에 맞춰 정책을 펼쳐 나갈 사람을 찾아야 한다. 어렵사리 차지한 자리여서 그런 것인가. 당상만 꿰고 나면 기사의 1면을 차지하는 고위관리들의 희박한 윤리의식, 도덕적 해이, 칡덩굴처럼 얽히고 설킨 엘리트 주의, 도무지 어디서 잘못됐는지, 무엇이 옳고 그름의 근원인지. 지금 한국 사회는 표류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눈 비비고, 우리 앞을 밝게 비춰줄 ‘희망’이라는 이름의 등대를 찾아보려 애써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