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주의(主義)’니 ‘이념’이니 하는 것들이 어떤 특정 목표의 수단으로 악용될 때 인간의 존재는 한낱 거대한 도그마의 톱니바퀴에 끼어 인간성을 파괴당한 채 소모품으로 희생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예는 멀리 갈 것도 없이 동서양의 최근세사에서도 그 예를 이따금씩 볼 수 있다. 러시아 볼셰비키의 피의 혁명, 히틀러의 나치즘, ‘대동아 공영을 위한 성전(聖戰)’과 ‘천황폐하의 황은(皇恩)에 보답한다’는 명분 아래 어린 청소년들을 가미가제 자살폭격기에 태워 내몰고, ‘구슬 가루처럼 찬란하고 아름답게 부서진다’는 옥쇄(玉碎)라는 집단자살을 강요한 일본군국주의의 광기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북한 매체들이 최근 지난 8월의 집중호우 때 자신이나 자녀들의 목숨보다 김일성 · 김정일 부자의 초상화부터 구해낸 ‘자랑스러운’ 사례들을 잇달아 보도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광부 김승진씨는 집이 물속에 잠긴 상태에서 자식을 희생시키고 초상화를 구했다”고 했다.
임업설계연구소 설계원 김덕찬씨의 경우 산사태가 집을 덮치자 아내에게 김일성 부자의 초상화를 먼저 건네고 자신은 흙더미에 묻히고 말았다고 보도했다. 또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죽어가는 다섯 살 난 딸을 버리고 초상화를 지켜낸 노동자 강형권씨의 사례와 이 밖에 산사태가 덮쳐오자 초상화부터 싸안고 나오느라 아내와 자녀를 잃은 ‘영웅적인 정신’ 등을 대대적으로 소개했다.
조선중앙방송은 12일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 해도 장군님(김정일 위원장)만 계시면 살 길이 열린다”며 “우리 인민은 운명의 보호자이며 승리의 상징인 장군님을 절대적으로 따르고 있다”고 제법 감격에 겨워 울먹였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런 감동적인 이야기는 피해지역 어디에나 있었다”며 “조선 인민은 수령을 위해서라면 자기의 생명도 기꺼이 바칠 줄 아는 의리 깊은 인민”이라고 전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 것인가. 논설할 가치조차 없는 게 북한 인민의 삶이다. 이들을 노예의 삶에서 건져내는 길은 개방과 개혁뿐이다. 그러나 평양에 다녀온 노무현 대통령은 “개혁 개방은 북측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논의 자체를 금지시켰고, 이 단어는 통일부 홈페이지에서 아예 삭제됐다. 개방 개혁을 뺀다면 남북경협은 북 정권을 지탱해 주기 위한 것인가. 이러고도 남한 국민들은 낯을 들고 북한 인민에게 동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