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이 티켓 수입만으로 수지 균형을 맞추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영국 런던에서도 가장 번화한 상업지구이며, 영화관·극장이 모여 있는 웨스트엔드나 미국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를 중심으로 뮤지컬을 비롯한 쇼 관련 극장이 많은 브로드웨이 상업극장 등 특수한 경우 외에는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전국적으로 150여개의 문예회관이 운영되고 있다. 극장운영을 위해 소요되는 예산만 해도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해마다 적게는 10억원에서 수백억원에 이른다. 그리고 공공극장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공공극장이 부실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많은 공공극장들이 시민들을 위해 좋은 공연을 공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비어 있는 날이 많거나 각종 교육이나 행사장으로 더 많이 활용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이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은 예산과 전문 인력이 턱 없이 부족한데에 있다. 연간 수억원의 사업비로 12달 운영 프로그램을 구성하기란 아무리 뛰어난 공연 기획자라 해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처럼 빠듯한 예산으로 연간 운영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극장일수록 직원들은 전천후적인 맹활약을 보이고 있다. 기획, 홍보, 관객 안내, 시설 관리 등 모두를 한 사람이 맡아하는 곳도 있다. 그리고 이런 극장은 한결같이 사업비 규모가 전체 운영예산의 20%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최소 수백억원의 예산을 들여 지은 극장을 유지 관리하는데 필요한 예산이 시민들의 문화 감수성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 예산을 철저히 압박하는 상황이다. 지자체의 재정 운용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운영비 80%에 사업비 20%인 극장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경제논리로 치면 당장 퇴출대상일 뿐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애초에 극장을 지을 때 꼼꼼히 따져보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사업을 시작한데 근본원인이 있다. 출발이 잘못된 것이다. 문화수요를 감안하지 않는 것은 물론 시설 규모와 기자재 시스템 설계까지 잘못된 관례를 반복하고 있다. 지역마다 주민의 정서와 취향이 다를 수 있고 그래서 극장마다 독자적인 특성을 지닐 수 있도록 사전 조사와 치밀한 안배가 필요한데 외양이 멋있는 건물만 덩그러니 짓는 식이다.
여기에는 극장 기능성보다 미술적 감각을 중시하는 건축가들에게도 문제가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웬만한 사람들 모두 이미 알고 있는 상식임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오류가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출발할 때부터 전문가들의 의견을 구하면 된다. 제일 좋은 방법은 극장 경영자를 먼저 선임하고 극장 입지부터 설계에서 운영에 이르기까지 그와 상의해 결정하면 된다.
최소한 개관하기 몇 년 전부터 극장장의 업무는 시작되는 게 이상적이다. 그래야만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건축물을 탄생시킬 수 있고 각 시군의 정황에 걸맞은 프로그램 운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500석 규모의 어느 극장은 청소에서 전기, 기계 등 시설관리와 기획, 홍보마케팅에서 안내까지 단 6명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자체 기획 프로그램을 개발해 웨스트엔드로 진출한 실적을 갖고 있다. 크리에이티브와 열정이 극장경영의 핵심임을 설명하는 좋은 본보기이다.
극장은 직장이 아니다. 문화운동의 장이다. 그래서 능력과 열정을 갖춘 최소한의 인원으로 지역사회에 봉사해야 한다. 이제 극장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 건물 다 지어 놓고 개관 임박해서 직원을 뽑고 충실한 문화 서비스와 재정 자립도를 높이라는 주문을 실현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극장은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안을 안겨주고 시민들로 하여금 삶의 기쁨을 발견하게 하는 곳이다. 처음 시작할 때 단단히 준비를 하면 시설 규모에서 시스템 설계 그리고 인력운용까지 그야말로 효율의 극대화를 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