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시 호법면 유산리 ㈜코리아2000 냉동물류창고에서 굉음과 함께 대형 화재가 발생, 인부 40명이 숨지고, 17명이 부상을 입고 인근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특히 이번 참사는 지난해 11월28일 인근 CJ냉동창고 화재 사건 이후 불과 40일만에 발생한 것으로 건축주와 이천시, 이천소방서의 총체적인 안전불감증으로 드러났다.
불이 나자 소방 당국은 화재 진압과 함께 생존자 구조 작업을 벌였지만, 유독 가스 등으로 작업이 중단됐다 재개 되는 것을 반복, 구조 작업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지하 기계실 우레탄 작업 중 유증기 폭발 연료에 불 붙어
7일 오전 10시45분쯤 이천시 호법면 유산리 769-5 ㈜코리아2000 냉동물류창고 지하층 기계실에서 폭발과 함께 불이 났다.
냉동물류창고 입구에서 T순대국집을 운영하는 장모(50) 씨는 “처음에 갑자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전기가 잠시 끊겼다”며 “폭발음을 듣고 나와보니 순식간에 불이 번졌다”고 말했다.
이 불로 건물 지하에서 작업 중이던 인부 57명 중 30명이 숨진 채 발견됐고 10명은 생사가 불투명한 상태며, 17명은 극적으로 탈출해 이중 10명은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지만 중태다.
당시 화재 현장에는 냉동설비 34명, 전기설비 17명, 에어콘 설비 3명 등 작업인부 54명과 관리자 등 57명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불은 지하층과 지상 1~2층 2만8천480㎡와 설비류 등을 모두 태워 6억원(소방서 추산)의 재산 피해를 냈다.
▲진화 및 구조작업
불이 나자 소방차 103대와 소방관 440명, 경찰 2개 중대와 교통기동대 등이 동원돼 진화 및 구조 작업을 벌였지만 화학물질의 폭발이 계속되면서 유독가스가 발생, 진화 작업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또 미쳐 대피하지 못한 인부 중에는 휴대전화를 통해 구조 요청도 보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당국은 우레탄 작업 중에 출입구 쪽에서 시너 유증기가 착화해 폭발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정확한 화재 원인은 조사 중이다.
이천소방서 관계자는 “사고발생 직후 40여명이 아직 건물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것으로 판단돼 진화 작업과 함께 구조작업을 하고 있으나 폭발이 계속돼 진입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 사건현장 아비규환
사방 유독가스로 뒤덮여 구조 지연돼
구경꾼·소방·경찰차 뒤엉켜 아수라장
7일 57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이천시 호법면 유산리 ㈜코리아2000 냉동물류창고 화재 현장은 말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본지 취재팀이 화재 현장에 도착한 시각은 이날 정오쯤. 당시 현장에는 시커먼 연기가 사방을 뒤덮어 숨쉬기 조차 힘들었고, 진화작업을 위해 출동한 소방차와 경찰차, 땅을 파고 있는 굴착기 소음으로 귀청이 터질 지경있다.
유독가스로 인해 구조대원과 화재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연신 지침을 토했으며, 시커면 연기로 인해 한치 앞도 내다 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구조대원들은 방염복을 입고 마스크를 쓴 채 건물 진입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집어 삼킬 듯한 유독가스로 인해 진화 작업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인근 도로는 화재 현장을 구경하려는 구경꾼과 소방차, 경찰차로 인해 한때 혼잡을 빚기도 했다.
오후 3시쯤 첫 번째 희생자가 불에 타 숨진 채 소방관들에 의해 수습되자 주위에서는 한동한 침묵이 흐르는 등 곳곳에서 아쉬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구조대원들은 혹시나 모를 생존자 구조를 위해 화재 진압에 열을 올렸지만, 시커면 연기와 함께 발생한 유독가스로 인해 화재 진압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5시30분쯤 화재 진압 작업은 잠시 중단됐고, 유독가스가 빠지기만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연기가 소강 상태로 들어선 6시15분쯤. 화재 진압 작업과 구조작업은 재개 됐고, 이후에도 수 차례에 걸쳐 작업과 중단을 반복했다.
현장에 있던 소방관들과 구조대원들은 흰색 마스크를 쓴 채 연기를 막았지만, 유독 가스로 인해 금세 검은색으로 변했다.
최진종 경기도소방재난본부장은 “지하 창고내부에 연기와 함께 유독가스가 가득차 있어 구조작업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소방관들이 30분 이상 수색작업을 하지 못해 구조대원들이 교대로 현장에 투입 중”이라고 말했다.
■ 피해 왜 컸나
축구장 2배 넓이에 대피로 달랑 1곳
우레탄폼 연료 15통 등 산재 화키워
7일 화재로 수십명의 사상자를 낸 이천 냉동물류창고는 단열재인 우레탄폼의 유증기가 가득 찬데다 LP가스통 등 폭발성 물질이 산재해 ‘화약고’와 같은 위험을 안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게다가 불이 난 지하 1층은 면적 2만3천338㎡로 축구장 2배에 가깝지만 전면 출입로 외에 대피로가 반대편에 1곳만 있어 사실상 ‘비상구’ 없는 밀폐공간인 관계로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소방당국과 부상자들의 진술을 종합하면 이날 화재는 창고 지하1층 바닥과 벽면, 천장을 마감한 우레탄폼 발포작업에 따라 시너 등 유증기가 체류한 상태에서 불티가 튀며 연쇄폭발과 함께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안상철 이천소방서장은 “창고 지하층 내부가 두께 10㎝의 우레탄폼으로 덮여 있었고, 내부에는 쓰다남은 200ℓ짜리 우레탄폼 연료 15통이 있었다”며 “유증기에 불꽃이 튀며 우레탄폼으로 불길이 급속히 번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냉동창고를 운영하는 코리아2000의 공사현장 책임자는 “얼마전(지난해 12월29일) 우레탄폼 발포공사를 마쳤다”며 “그러나 우레탄폼 연료 상당량을 치우지는 못했다”고 시인했다.
특히 코리아2000은 이날 영업(12일) 개시를 5일 앞두고 유증기가 지하에 찬 상황에서 서둘러 50여명의 인부를 투입해 전기작업과 배관작업, 냉매주입 작업에 열중, 화를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 화재진압에 나선 소방관들은 지하 창고에 작업용 LP가스통이 산재해 있었다고 전했다.
코리아2000 건물 지하1층은 화재 등 사고발생시 신속한 대피가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어 인명피해가 컸다고 소방당국은 밝혔다.
불이 난 지하1층은 가로 180m, 세로 127m로 엄청난 규모지만 전면에 출입구 4곳과 반대편 출입구 1곳만 설치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냉동창고가 6구획으로 나뉘어 칸막이로 돼 있는 복잡한 구조라 탈출로 확보가 상당히 어려운 구조로 확인됐다.
이천소방서 관계자는 “구조되거나 탈출한 인부들은 출입구쪽에서 작업중이었고 사망자와 실종자들은 건물 안쪽에서 작업한 것으로 보인다”며 “탈출로도 없는 상황에서 유독가스가 급속히 번지며 화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시신 훼손 심해 신원파악 어려워
이천 냉동창고에서 발생한 대형화재로 수십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화재 현장에서 뿜어낸 불길과 열에 시신이 심하게 훼손돼 희생자들의 신원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최초 폭발때보다는 사망 후에 건물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과 불에 시신이 훼손됐을 가능성이 크다”며 “지금까지 발견된 희생자들은 훼손이 너무 심해 성별 정도만 구분이 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육안으로 구분이 어려운 사망자들은 경찰에서 치아 의료기록 대조, DNA 감식 등을 통해 신원을 파악하게 돼 사망자 신원 확인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발굴된 시신의 유전자를 일일이 감식할 여력이 없다”며 “시신이 추가로 발견되고 있어 화재 현장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된 뒤 유전자 감식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실종자의 상당수가 인력시장을 통해 파견된 일용직 근로자들로 이름 외에 얼굴 등 다른 신상정보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어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소방본부 관계자는 “실종자 가운데 상당수가 인력시장을 통해 작업장에 온 일용직 인부들이라 얼굴을 봐도 누구인지 확인해줄만한 동료 등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며 “특히 인력시장의 경우 통상 인부가 파견업소에 신분증을 맡겨 놓는 경우가 많아 신분증 등 신원을 확인해줄만한 단서도 갖고 있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사망자 신원 파악은 물론 정확한 실종자 인원과 이들의 나이나 연락처 확보에도 어려움이 있는 상황이다.
■ 사망·부상자 명단
7일 오후 8시 현재 총 57명 중 사망 40명, 부상 17명. 사망자 신원이 확인되지 않아 실종자 명단 중 30명은 사망자와 중복될 수 있음.
◇사망자(22명)
▲신원파악중<이천의료원 및 효자원 안치>
◇실종자(40명·사망자 일부 포함)
▲한우기업:김준수(32) 이종일(45) 강재용(66) 황의충(48) 최지영(50) 지재헌(46) 우민하(38) 김태규(30) 최용춘(36) 윤종호(32) 김진수(40) ▲유성기업:김우익 김영호 윤석원 이영호 임남수 장행만 김용민 김완수 윤옥주 이용걸 윤옥선 박경애 조동면 이준호 이명학 김용해 최승보 엄준영 손동학 김진봉 정상란 이승복 박영호 박용식 성명불상 외국인 2명 ▲아토테크:신원준 성명불상 1명 ▲청소업체:이을순(여)
◇부상자(10명)
▲최중한(50) 이경희(50) 천우한(33)<구로 성심병원> ▲안승식(53) 박종영(38) 심영찬(50) 임충월(여·45)<강남 베스티안병원> ▲신창선(52) 김형문(48) 카이룰루(32)<이천 파티마병원>
◇탈출자 및 구조자(7명)
▲최성신 이병권 이대희 이찬재 고영철 권창호 강희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