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1 (일)

  • 흐림동두천 10.1℃
  • 흐림강릉 6.3℃
  • 흐림서울 12.6℃
  • 구름많음대전 12.7℃
  • 흐림대구 9.0℃
  • 흐림울산 8.3℃
  • 맑음광주 15.3℃
  • 구름많음부산 12.1℃
  • 구름많음고창 13.3℃
  • 제주 12.7℃
  • 흐림강화 10.6℃
  • 구름많음보은 9.5℃
  • 구름많음금산 12.5℃
  • 흐림강진군 12.3℃
  • 흐림경주시 8.3℃
  • 구름많음거제 12.3℃
기상청 제공
1980년대 처음으로 난파 홍영후가 '친일음악가'라는 주장을 제기한 노동은 교수. 난파에 대한 기존의 평가와는 달리 그는 난파가 적극적으로 친일행각을 벌였다고 강조한다.
"난파가 한국 양악계에 큰 족적을 남긴 음악가임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1937년 수원 종로경찰서에서 한 달간 옥고를 치르고 현제명과 함께 '사상전향서'를 쓰고 나온 후부터는 음악을 통한 친일행각을 계속해왔습니다."
그에 따르면 그는 사상전향서 작성 후, 도산 안창호 선생의 민족부흥운동 단체 흥사단을 탈퇴, 이름을 '모리가와 준'으로 창씨개명하고 공적 친일활동을 전개했다. 대표적인 활동이 1937년 7월에 친일단체인 조선문예회 소속 음악인으로서 친일가요창작활동을 전개한 것이다. 그는 '총후풍경가' '황군격려가' 등을 작사.작곡 및 보급했으며, "천황폐하의 분부를 받아 일본정신의 필굉일우로 대동아공연권을 건설하여…"라는 춘원 이광수 작사의 '희망의 아침'을 작곡했다.
"현재의 홍난파 평가는 몇 음악인들에 의해 사실 이상으로 부풀려져 잘못 전해지고 있는 내용들입니다. 그는 어두운 시절의 양악계 공헌자일 수는 있어도 독립운동가로서 민족음악가가 결코 아니었으며, 악단 대부로서 친일음악가였습니다."
한편 1996년 정부(문화체육부)는 홍난파의 친일행각이 알려지자,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1992년 8월 '8월의 문화인물-홍난파'를 공식 철회했다.
정수영 기자 jsy@kgnews.co.kr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