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파가 민족음악가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양악의 아버지인 그가 우리 음악사에 끼친 영향력과 업적을 제대로 평가하자는 것입니다."
음악평론가 이상만(다움문화예술기획연구회 이사장)씨는 우선 그가 친일행위를 벌였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나 음악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가 남긴 업적은 기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1880년대 서구화가 시작되면서 급변해가는 시대를 살았던 난파는 항상 한국음악계의 변화를 주도하면서 앞장서 간 예술가의 한 사람이었다. 그의 작품과 생각, 그가 남긴 많은 글들이 우리나라 양악의 변천사에 큰 자국을 남겼다.
"지금도 그의 작품을 떼어놓고 우리나라의 신 음악을 말하기는 어렵지요."
실제로 난파의 '고향생각', '봉선화' 등은 전 국민적 가곡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최근 북한이 난파에 대해 "광복전 우리나라 음악을 개화, 발전시키는데 큰 몫을 담당했던 진보적 음악가"라고 재평가 한 것으로 알려져 난파를 사랑하는 많은 음악인들에게 힘이 돼주고 있다.
"난파가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63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는 44년간을 살았고, 그의 살보다 19년이 더 흘렀는데도 난파의 예술과 삶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지금부터 37년 뒤쯤인 2041년 무렵이면 더 정확해지지 않을까요. 왜나하면 올바른 평가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지기 때문입니다."
정수영 기자 jsy@kg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