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방지목(誹謗之木)이란 고사가 있다. 이 말을 글자 그대로 뜻풀이를 하면 ‘헐뜯는 나무’라는 뜻이다. 임금의 잘못을 적어 붙인 나무라는 뜻인데, 덕으로 다스리던 요 임금은 자신의 그릇된 정치를 누구라도 지적하도록 궁궐 다리목에 이 나무를 세워놓고 민심에 귀를 기울였다고 한다.
중국 고대사를 보면 요와 순 두 임금은 전설상의 인물이며 역사적인 실재성은 약하지만 이상적인 정치를 펼친 성덕이 높은 임금으로 평가되고 있다. 요 임금은 성은 도당이요, 이름은 방훈이라고 하는데 그는 하늘처럼 어질고 신처럼 박식하며 자비롭고 총명하기가 이를데 없고, 부유하였으나 교만하지 않았으며 거드름을 피우거나 오만하지 않은 인물이었으므로 백성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정치를 실현한다는 이런 성군도 부지중에라도 실수할 수가 있고, 자신도 완벽한 존재가 아님을 인정하면서 누구라도 임금의 허물에 대하여 비판할 수 있도록 비방지목을 세워 백성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하도록 하였다고 하는데 요 임금시대는 오늘날보다도 언로가 열린 시대인 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요 임금은 ‘감간지고(敢諫之鼓)’ 제도를 설치했는데, 감간지고는 잘못된 정치가 있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두드리도록 궁궐문 앞에 설치해 놓은 북이다. 조선조 태종1년(1401년)에 설치한 신문고와 같은 역할이었는데 ‘감간’은 감히 임금에게 옳지 못한 일을 고치도록 말한다는 뜻이다.
또한 순 임금은 ‘진선지정(進善之旌)’ 제도를 실시했는데, 진선지정은 길가에 깃발을 세워 정치에 대해 의견을 자유롭게 발언하도록 한 것이었다. 요 임금의 비방지목과 감간지고는 백성에게 정치의 결점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기 위한 조치였으며 오늘날의 대자보와 비슷하다.
요와 순 임금은 물론 전제정치였지만 철저히 백성의 뜻에 따라 정치를 펼치려 한 성군임에는 틀림없다. 원래 비방이란 말은 ‘작게 말하는 것을 비(誹), 크게 말하는 것을 방(謗)’이라고 하였는데, 오늘날에는 그 뜻이 변해서 부정적으로 인식되어 남을 비웃고 헐뜯어서 말한다는 의미로 바뀌었다.
연산군은 자신을 비방하는 무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신하들의 목에 신언패를 착용케 했다. ‘말을 삼가라는 팻말’이라는 뜻으로 오늘날로 말하면 지독한 함구령이었으며 철저한 언론봉쇄였던 것이다.
비방을 두려워하는 것은 소인배요, 언로는 물 같아서 막으면 화근이 되는 것이다. 누구라도 비방을 달가워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방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역시 큰일도 할 수 없는 법이다. 물론 여기에서 비방은 까닭없이 무고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지만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스스로 비방지목을 세우고 감간지고를 설치해 언로를 열어야 한다.
비방을 두려워한다면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 된다. 크고 작은 소리를 귀담아 듣고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있는 법인데 자신을 비방한다고 발끈하는 사람은 소인배 소리를 들어도 싸다. 사람들은 물을 보고 그 물에 뜰 수 있는 배가 어떤 배인지를 안다.
물의 입장에서 보면 그 물이 품을 수 있는 배가 따로 있다는 말이다. 물은 그 깊이 만큼 배를 띄울 수 있다. 얕은 물 위에는 종이배를 띄운다. 호수에 띄우는 배는 유람선이다. 그러나 깊고 넓은 대양에는 큰 배를 띄운다.
물의 깊이와 넓이가 배의 크기를 결정한다. 우리 가슴이 옹달샘 같으면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 가슴이 대양 같으면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오늘 우리 사회를 보면 남의 허물은 통렬하게 정죄하면서도 정작 자신에게는 관대한 눈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언제부터인가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통속적인 말이 생겨났다. 자신의 가치가 중요하면 상대방의 존재도 인정해야 한다. 자기만이 최고요, 남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이기주의, 똥 묻은 개 겨묻은 개 나무라는 식으로 적반하장 일때 필연적으로 이전투구가 일어난다.
박남숙<용인시의회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