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에 핀 장미꽃은 어쩌면 내가 닮고 싶은 삶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이에게 아름다움과 기쁨을 주는 그런 삶. 어느새 50년이 넘었다. 내 인생의 희로애락을 화폭에 담아낸 시간들이. 전시회를 앞두고 옛날 그렸던 그림들을 하나 둘 꺼내본다. 그 하나 하나가 지난한 삶의 단면들을 보여주는 듯 하다. 새삼 세월무상이 느껴져 쓴웃음이 절로 난다"
'장미소녀, 이경순'이라 표현한다면, 넘침이 있을까. 인물과 정물을 아름다운 시선으로 끌어 내 끊임없이 새로움을 창출하는 여류작가 이경순(76·여) 화백에 대한 이 수식어가.
15번째 그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안양 롯데화랑서 일요일 오후 이 장미소녀를 만났다. 장미같은 화사함과 소녀같은 수줍음이 여든을 바라보고 있는 노장에게서 묻어난다.
그녀 앞에 늘 붙어다니는 단어 '장미'는 그녀가 그리는 정물화의 주된 소재다. 장미로 정물화 연작시리즈를 낼만큼 장미에 대한 애정이 깊다.
"옆으로 보나, 앞으로 보나, 위에서 보나, 아래서 보나 장미의 아름다움은 형용할 수가 없지. 아니 장미는 내가 추구하는 인생, 그 자체인지도 몰라."
이경순 화백은 고령의 여성화가 중 가장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기로 소문이 나 있다.
1953년 제2회 국전을 시작으로 연 15회의 입선과 4번의 특선 등을 거쳤고, 국전 출신 여류서양화가로는 최초로 추천작가가 됐다. 공모전이 많은 요즘과는 달리, 50∼60년대 미술인들의 등용문은 국전밖에 없었던 현실에 비춰보면 이는 대단한 기록이다.
인물화 '소녀'로 국전에 입선했던 그가 장미를 비롯한 정물화를 많이 그리게 된 것은 이화여대 시절 은사인 고 김인승 화백의 영향도 적지 않다.
스승의 집에는 늘 꽃이 만개했었다. 그리고 스승은 꽃을 대하며 항상 강조하곤 했다. '사물을 볼 땐 언제나 깊은 애정을 갖고 바라보아야 한다'고. '그래야 따뜻한 시선을 그림에도 담을 수 있다'고. 그래서인지 풍경, 정물, 꽃, 인물 등을 대상으로 한 이 화백의 그림에는 한결같이 따뜻함이 묻어난다.
하지만 그의 그림에는 삶의 희로애락이 담겨있다. 1950년 5월 이화여대 서양학과를 졸업한지 한 달여가 지난 후 6·25 전쟁이 일어났고, 그 해 겨울 대구로 피난을 가게 됐다. 그곳에서 한동안 생활하며 주위 사람의 소개로 52년 공군이었던 남편과 결혼했다.
그 어려웠던 시절, 그림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친정 아버지의 덕택이라고 한다. "이화여고를 졸업한 뒤 대학에 들어갈 무렵, 학교에서는 공부를 잘 하는 편인 내게 의과대에 지원하라고 했지. 그래, 아버지께 여쭤 봤더니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 하셨어. '사람이 하루 3끼 먹지, 4끼 먹고살지 않는다. 한번뿐인 인생인데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라' 라고."
고등학교 때부터 그림에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된 터라 아버지는 딸이 재능을 살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길 원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피난 가서도 광(廣)을 화실로 개조해 줄 정도로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다고 한다.
이제 그 아버지는 안 계시지만, 딸이 고스란히 그 역할을 이어받아 이 화백의 힘이 돼주고 있다. 단국대 서양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딸(조기주 교수)은 어머니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옆에서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안양에 위치한 화실을 함께 쓰고 있는 모녀는 서로가 서로에게 제자이자 스승이다. 지난 99년에는 모녀전시회를 열어 주위사람들의 부러움을 한꺼번에 사기도 했다.
이번 전시회는 지난 1997년 이 화백의 고희(古稀) 기념전에 이어 6년만에 갖는 개인전이다. 안양 롯데화랑측이 이 화백이 안양에 화실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개인전을 제의해 온 것이다.
지난달 28일부터 시작해 오는 17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42점의 그림과 4점의 판화를 선보인다. '장미' 연작들과 함께 창문, 창호, 골동품 등을 이용해 한국의 미(美)를 표현한 풍경화가 돋보인다. 특히 이 화백이 가장 마음에 든다는 아크릴 작품 '창가의 버들강아지'는 창틀과 가구가 이루는 수직, 수평의 기하학적 선이 정갈함을 더한다.
지난 87년 일본 순회전과 서울전을 동시에 개최한 후 불의의 뇌종양 수술을 받았던 이 화백. 지금은 퇴행성 관절염으로 고생을 하고 있긴 하지만 대체로 건강한 편이라고 한다. 그림과 함께 해 온 반평생,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는 그녀는 "손이 말을 듣지 않을 때까지 캔버스와 붓을 놓지 않을 것"이라며 예술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장미소녀, 이경순 화백의 예술에 대한 정신은 후진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정수영 기자 jsy@kg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