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는 비가 많이 내렸다. 바람도 세차게 부는데다가 비가 너무 많이 온 나머지 신발과 바지가 흠뻑 젖은 시민들이 많았을 것이다. 더구나 필자는 모처럼 새 구두를 구입하였는데 세차게 내린 비로 인해 신발은 물론 양말까지 모두 젖어버렸다. 비가 내릴 때 마다 시민들이 걷는 보도에는 곳곳에 물이 고이고, 차량이 지나칠 때마다 도로변에 고인 물이 튈까 신경을 쓰면서 다녀야 한다. 이제는 워낙 습관(?)이 되어서 비가 내릴 때 마다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인구의 도시집중과 그에 따른 도시화로 인해 시민들의 생활공간은 대부분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차고 도로로 경계가 나누어진다. 흔히 보고 만질 수 있었던 흙을 밟거나 만지거나 할 수 있는 기회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비가 나무와 풀 위에 내리는 소리, 흙에 떨어지는 소리도 듣기 어렵게 되었다.
도시계획의 한 부문인 우수(雨水)관리계획에 의해서, 비가 내리면 빗물은 즉시 빗물을 유도·배출하는 관(雨水管路)과 도로를 따라 빠르게 이동하는데, 이동하는 과정에서 도로 위의 온갖 오염물질을 함께 쓸어간다. 마지막에는 하천으로 흘러들어가도록 되어 있다. 한편, 시민이 걸어가고 차량이 다니는 모든 길을 ‘도로’라고 하는데, 그 도로는 거의 대부분 아스팔트, 콘크리트, 여러 석재 등 물이 스며들 수 없는 ‘불투수성’ 재료로 되어 있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비가 내리면 빗물은 땅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경사진 곳을 찾아 흐르게 되며 때로는 고이게 된다. 비가 적당히 내리면 빗물은 여러 경로를 통해 배출되어 하천으로 흘러가지만, 빗물을 유도·배출하기 위한 계획에서 정한 양보다 많이 내릴 경우에는 도로에 내리는 빗물이 채 배출되지 못해 거리는 소위 ‘한강’으로 변해버린다.
환경계획 분야에서는 도시지역에서 ‘흐르는 빗물(流出水)’의 양에 따라 도시지역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지기 때문에, 도시지역에서 물을 흡수하고 순환시킬 수 있는 자연토양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녹지가 얼마나 조성되어 있는 지를 중요한 지표로 활용하고 있다. 얼마 전 모 연구원에서 서울시 인접 도시의시가화구역(대체로 이미 시가지를 이루고 있는 구역을 의미)내 녹지면적을 조사연구해 발표했다. 조사대상 10개 도시 중에서 과천시가 약 23%의 가장 높은 녹지면적을 가지고 있었고 광명시, 부천시, 안양시, 의왕시 등의 경우 겨우 5% 내외로 매우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조사결과는 곧, 비가 내릴 경우 해당 지자체에서는 빗물을 대부분 하천으로 흘려보낸다고 간주할 수 있으며, 특히 비가 많이 내릴 경우에 도로가 ‘한강’으로 변해버릴 소지가 크다고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요새처럼 빗물을 바로 하천으로 흘려보내지 않고 가두어서 재활용하는 기술이 대두되는 시대에 빗물을 그대로 흘려보내는 것은 실로 에너지 낭비인데다 환경악화를 가중시키는 것이 된다(더구나 우리나라는 UN에서 정한 물부족 국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빗물관리계획과 환경계획이 지향하는 것 중에 하나가 빗물이 잘 배출되고 빗물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면, 이를 생활환경의 수준을 높이고 시민의 삶의 질로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대답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며, 그중 하나는 바로 ‘공공디자인’이다. 시민이 거리를 걸으면서 신발과 옷이 젖지 않도록 물이 고인 곳을 피하고, 차량에 의해 행여나 물이 튈까 신경쓰지 않도록 하는 ‘디자인’이 적용된 거리이다. 그러한 거리를 걸으면서 비에 젖은 풀내음을 맡으며 편안하고 안전하게 걸어갈 수 있도록 하는 ‘디자인’이 적용된 거리이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비가 많이 오는 나라 중 하나이지만, 배수시스템이 우수해 비가 내려도 거리엔 물이 고인 곳이 거의 없다(필자가 살던 동네도 마찬가지이다).
곳곳에 조성된 쌈지공원과 문밖에 걸린 화분들, 도로변의 화단과 가로수 등이 모두 어우러져 빗물이 떨어지는 속도를 늦춰주고, 빗물을 흡수해 거리에 물이 고여 넘칠 새도 없다. 게다가 거리를 걷는 시민에게는 빗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해준다.
우리나라 지자체에서 공공디자인 정책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고, 그 추진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다. 하지만 여전히 시각적인 아름다움이나 조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경향이 짙은 것이 사실이다. 또한 ‘살고 싶은 도시, 걷고 싶은 가로, 살기 좋은 지역’이라는 정책들도 많이 내세우고 있다. 주민, 시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니 주민과 시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문가들에게만 맡기지 말고 시민들과 함께 비오는 거리를 걸어보면 분명 서로 공감하는 것이 있을 터이다.
오민근 <문체부 지역문화과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