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이 들려거든 아예 바삭 말려 죽이고 비가 오려거든 너나 없이 쓸어 버려라 그래야 농민들이 비로소 소중한 줄 알 것이 아니냐’ 들판을 보며 저주를 내린다.
농민들은 한·칠레 FTA로 무너진 가슴이 아물기도 전에 쌀개방을 맞았다. 11월 칼바람이 부는 여의도 투쟁에서 전용철 홍덕표 열사를 잃었다. 그리고 쌀을 점령한 그들은 이내 한·미 FTA의 체결이라는 농업의 대사변을 일으켰다. 농민들은 분노와 억욱함에 투쟁에 나섰지만 눈물을 삼키며 패배의 길을 걸어왔고 그만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고 체념을 배워가고 있다.
농민들이 농사를 망하라고 빌어서일까 국제곡물가격이 치솟더니 밀가루 파동이 났다. 짜장면값이 오르고, 라면값이 오르고, 과자값이 올랐다.
미국 옥수수 값이 70% 오르고, 중국 옥수수는 수출금지가 되었다. 콩값이 오르고 쌀값이 오르고 국제곡물가격은 폭등하기 시작했다. 말로만 걱정하던 식량대란의 시대가 왔다. 농민들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동안 돈만 있으면 식량안보도 사올 수 있다고 믿는 정부의 오만을 제대로 고쳐줄 절호의 때가 온 것이다. 그리고 식량의 소중함, 농업과 농민의 소중함이 이제 국민들의 관심사가 되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게 어찌된 일인가. 식량대란은 농민의 희망이기는 커녕 농민들의 숨통을 죄는 족쇄가 되고 있다. 국제 곡물가격의 상승은 그만큼 사료값의 인상을 가져왔다. 소 한 마리는 1만1천원짜리 사료 한 포를 이틀마다 뚝딱 해치운다. 사료값이 비싸다고 해서 굶길 수도 없고 사료값에 맞아죽을 지경이라 소를 내다 팔려고 해도 사는 사람이 없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맞물려 2년 전 350만원에 산 송아지가 2년 동안 사료를 먹이고 팔려고 하니 370만원이란다. 2년 사이 소 값이 송아지 값이 되어버렸다.
국제 곡물가격이 오르자 세계 각 국은 곡물생산을 늘리기 위해 화학비료 사용량을 늘렸다. 비료원료가 부족해지면서 비료값이 폭등했다. 다른 나라에 현금을 준다고 해도 비료를 수입할 수 없는 실정이다. 3년 사이에 비료값이 280%가 올랐다. 비료 한 포의 값이 2만원이 넘는다. 쌀값은 제자리 걸음이고 농산물 값은 폭락하는데 무슨 수로 비료를 뿌릴 것인가. 그 와중에도 비료회사들도 높은 값에 수출해서 많은 이익을 냈다.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는지 2012년까지 1조7천억원을 들여 청보리 등 조사료로 사용할 수 있는 겨울철 사료작물 재배에 지원을 한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역사에서 배우듯 객관조건 자체가 우리 농민들의 삶을 낮게 해주지는 못한다. 곡물가격의 폭등은 사료값 인상, 비료값 인상 등으로 이어져 많은 농민들이 농사를 포기할 것이고 정부는 경쟁력 있는 몇몇 농가를 통해 식량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자신할 것이다. 식량대란은 농가등록제와 맞물리며 농가의 구조조정을 더욱 촉진해 고령농을 급속하게 이탈시키고 전업농, 기업농 육성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될 것이다. 식량대란이 와도 여전히 농민들에 대한 가혹한 핍박은 계속될 것이다.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에 반대하는 거대한 촛불에서 느끼듯이 이제 안전한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한 식량주권을 지키는 일은 더 이상 농민의 일이 아니라 국민의 몫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남쪽만의 힘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미국에 철저히 예속된 현재의 농업 구조에서는 사료값, 비료값, 기름값에 살아남을 농민이 없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남과 북이 힘을 합치면 지금의 식량 위기를 극복할 방법이 생긴다. 남에서는 비용을 들여 폐기해야할 축산 분뇨가 북에 거름이 되고, 북의 옥수수와 콩이 남의 사료가 되는 상호보완의 농업구조, 남의 남는 쌀이 북으로 가고 북의 감자가 남으로 오는 상생의 구조를 만들어야 비로소 민족의 식량주권이 온전하게 지켜질 수 있다. 남과 북의 먹거리를 함께 지키는 일이 식량주권을 제대로 지키는 일이고 그 속에 농민들의 살 길이 열린다. 식량대란이라는 민족의 위기는 농민들에게 또 다른 기회가 되고 있다. 이 기회를 잘 살리는가 못 살리는가 하는 것은 농민운동 주체들이 얼마나 준비를 잘하고 있는가를 스스로 돌아보게 한다.
최재관<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경기본부 집행위원, 전 전농총연맹 정책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