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다가온다. 전에는 명절이 다가오면 모두들 행복했다. 소박하게나마 이런저런 선물꾸러미를 들고 고향에 내려가 오랜만에 고향에 있는 동창들도 만나보고 부모, 형제, 시집 장가간 조카들, 사촌, 육촌들도 얼굴을 볼 수 있어서 반가왔다.
노인들은 자식들 만날 생각에 손꼽아 명절을 기다렸고, 주부들은 그나마 자식들에게 맛난 음식을 배불리 해먹일 수 있어 허리가 휘게 일을 해도 지치지 않았고, 가장들은 가족들이 모두 행복해 해서 마음 뿌듯했다.
돌아가신 조상님 제사상 차리는 일은 살아 있는 후손들에게 오랜만의 큰 잔치였기에 명절은 가족공동체에 있어서 모처럼 정기적으로 돌아오는 행복한 날이었다.
먹을 것이 없어 배고프고, 만나보지 못해 보고 싶은 가족들이 날을 잡아 조상을 핑계로(?) 공식적으로 한자리에 모여 앉아 푸짐하게 떡하고, 고기삶아, 부치게에, 나물에 배불리 먹는 날이 명절이었다.
그런데 세상이 변화하였다. 배고플 일도 별로 없고, 부모 형제간에 연락이 안되어 못 만나볼 일도 없다. 따라서 명절을 맞는 사람들의 마음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별로 보고 싶지 않아도 만나야 하는, 거꾸로 대단히 형식적인 날로 바뀌어 가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거꾸로 명절증후군이 생겨나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집단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 명절에 대한 거부감이 늘어나고 있다.
첫째, 비혼(미혼) 남녀들이다. 특히 20대 후반에서 30대로 넘어간 여성들에게 있어서 명절날 친척 만나기는 스트레스 중의 스트레스이다.
노인들은 아무리 눈치를 주어도 막무가내로 묻는다 “얘야, 올해도 시집안가냐?” 당연히 친척집에는 절대 가지 않으며, 친척들이 집에 오는 시간이면 잠시 가출(?)해 버리고 만다.
둘째, 결혼은 했으나 임신하지 않은 여성, 딸만 내리 낳은 여성들이다. “아가, 아직도 애가 없냐?”, “애야, 내년엔 아들 낳아야지?” 공포에 버금가는 질문으로 그러잖아도 속상한 마음의 상처에 소금뿌리는 날이 불임여성과 딸만 낳은 여성의 명절날의 모습이다.
셋째, 며느리들이다. 시장보고 음식 장만에 허리 휠 생각에 미리 머리 아픈, 그렇다고 내색 한마디 할 수 없는 큰며느리들, 아랫동서가 ‘전과 나물은 제가 해가지고 갈게요’하는 제안이 없어 서운한 손윗동서, 직장 다니는 자신의 형편을 고려해주지 않는 다른 동서들 때문에 섭섭한 또 다른 며느리들, 특히 살아계신 친부모님보다는 돌아가신 시부모님 제사가 우선인 며느리들에게 명절은 공식적인 성차별의 날이 된다.
넷째, 증가하고 있는 외로운 노인들이다. 아들이 있기는 하나 명절날이 가까워도 ‘우리 집에 미리 오시라’는 전화 기다리기에 지친 노부모들, ‘명절 지나도 며칠 더 주무시고 가시라’는 말조차 없어 더욱 서운한 노부모들, 그나마 함께 할 자식도 없어 명절이면 더욱 외로움에 사무친 노인들, 모처럼의 연휴랍시고 전화 한마디로 인사 때우고 외국여행 떠나버린 아들 며느리 손주에 상처받는 노인들이 증가하고 있는 날이 명절이다.
다섯째, 지갑이 가벼워 지치는 가장들이다. 명절이 가까워 보너스 생활비를 고대하는 아내를 둔 가장, 고향에 내려갈 면목이 없어 힘든 가장, 늘 그렇듯이 교통체증으로 운전하느라 지치는 건 고사하고 고향에 계신 부모님에게 드릴 용돈 수준에 고민인 자영업자 가장들, 그나마 내려갈 차비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하는 빚쟁이 가장들, 모두가 명절이 두려운 사람들이다.
여섯째, 이혼으로 외로운 여성가장들이다. 사별은 그나마 시댁의 지원이나 있지 이혼한 여성가장들은 차마 친정집에도 얼굴들고 가지 못해 가슴 아파하는 날이 명절이다. 아이들 데리고 갈 곳도 없고, 할 일도 없어 더욱 힘들게 한다.
게다가 명절이 지나고 나면 반드시 언론에 보도되는 기사가 있으니 ‘부모 재산을 둘러싼 형제간의 재산싸움’이다. 상담소에는 명절 후 며칠 지나면 ’사촌오빠로부터의 성추행’ 상담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어 또한 가슴 아프게 한다.
이 글을 쓰면서 명절을 내가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는 건 아닐까,
긍정적인 모습은 없을까 살펴보았다. 그래서 주위사람들에게 물어 보았다. 명절이 오는 것이 기쁘지 않느냐고. 그러나 샐러리맨들은 그냥 회사 나가지 않으니 좋다고만 할 뿐 긍정적으로 대답하는 사람은(집단)은 거의 없었다.
세상이 변화하면 사람 사는 모습도 달라져야 한다. 언제까지나 우리사회에서는 겉으로는 ‘즐거운 명절’, ‘가족’을 외치면서 속으로는 곪아가는 가족의 모습, 명절로 인해 상처받는 소외계층 집단은 외면할 것인가? 이젠 명절의 모습이 달라져야 한다. ‘가족’이라는 허울로 상처받는 집단들을 위해서라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