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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언론의 자살보도 신중해야

 

최근 유명 연예인 안모씨의 자살 이후 안씨의 자살과 유사한 수법으로 연달아 발생한 자살사건들이 많은 사람들의 걱정을 자아내고 있다. 혹자는 이와 같은 유명 연예인의 자살이 ‘베르테르’ 효과를 발휘한다고도 지적한다. 베르테르 효과란 ‘동조자살(copycat suicide)’ 또는 ‘모방자살’이라는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이같은 자살을 모방하는 현상은 독일 문호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에서 유래하였는데, 이 소설은 주인공 베르테르가 여자 친구를 열렬히 사랑하지만 결국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실의에 빠져 권총으로 자살을 한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시 이 소설은 유럽 전역에서 베스트셀러로 자리를 잡았고 결국 유명세의 결과, 베르테르의 모습에 공감한 젊은 세대의 자살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이 때문에 이 소설은 유럽 일부 지역에서 발간이 중단되는 일까지 생겨나게 되었고, 이후 자살에 이른 젊은이들은 결국 이 소설의 주인공이었던 베르테르를 모방하여 자살에 이른 것이라 여겨겼다.

베르테르 효과는 이처럼 자신이 모델로 삼거나 존경하던 인물, 또는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유명인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해서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같은 정의는 1974년 미국의 사회학자 필립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며 결국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그는 20년 동안 자살을 연구, 유명인의 자살이 언론에 보도된 뒤에는 자살율이 급증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안씨 사건 이후 연탄가스 중독으로 인한 자살사건이 연이어 세 건이나 터진 것은 우연에 의한 결과는 아닌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즉 베르테르 효과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도 입증이 된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상황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유사한 사태의 반복을 막기 위해서는 역시 사건내용을 여과없이 보도하는 자세를 지양해야 할 것이다. 이때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하는 사실은 바로 심리학자인 반두라가 지적한 내용일 것이다.

반두라에 의하면 관찰학습은 주의집중 과정, 기억 과정, 운동 재생 과정, 동기 과정 등 네 단계가 반드시 갖추어져야 성공적 관찰학습이 이뤄진다고 보았다. 베르테르 효과의 핵심은 본 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두라의 관찰학습의 요건을 살펴보는 일은 중요하다.

관찰학습을 하려면 먼저 모델에게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모델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잘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관찰한 행동을 기억해두어야 한다. 즉 기억을 하지 못한다면 나중에 모방을 하려고 해도 무엇을 따라해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관찰한 내용을 행동으로 옮기려면 그에 충분한 운동기술이 필요하다. 관찰만 한다고 해서 모두가 모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정 행동을 모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행동을 수행할 수 있는 기술이 동반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관찰학습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한 가장 주요한 요건은 바로 동기이다. 아무리 관찰을 한다고 해도 관찰한 행동을 몸소 옮기기 위해서는 관찰자의 동기가 꼭 필요하다. 반두라가 동기를 유발시키는 요인으로 강력하게 추천한 것은 바로 그와 같은 행동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강화물이다. 즉 모델이 어떤 강화물을 획득하느냐 하는 것이 바로 관건이 되며, 반두라는 강화물에 대한 동기가 강할수록 관찰학습이 강력하게 이뤄진다는 사실을 보고하였다.

우리는 안씨의 자살사건을 모방한 사람들의 특징을 주의깊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쉽게 발견되는 사실은 대부분이 안씨와 같은 상황, 예컨대 빚에 쪼들려 삶의 막바지에 이른 사람들이 모방자살을 했다는 점이다. 즉 경제적으로 절박한 상황, 그것도 가족이 있고 그 가족마져도 나의 채무로 인해 위기에 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 그 사실을 너무도 가슴 아파할수록 안씨의 선택은 충분히 모방할만한 강한 유인가를 지니게 될 것이란 사실이다.

즉 본인이 자살함으로써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든 협박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낼 수 있다는 사실. 며칠간 언론에서 보도한 내용은 바로 부인인 정씨를 보호하기 위해 안씨는 아마도 자살을 선택했을 것이라는 추정, 그리고는 두 사람의 미화된 사랑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같은 자살로 인한 구체적 강화물에 대한 과도한 보도 태도가 사실은 모방자살을 이끌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순히 안씨의 자살을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안씨의 선택을 미화시키고 신화화하는 보도태도 그것이 바로 자살을 부추키고 있는 것이다.

이수정<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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