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화예술 지원정책의 모토였다.
현금을 나눠주는 지원정책에 끊임없는 논란이 따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예술지원의 경계를 딱, 줄긋듯이 재단하는 것부터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예술은 그 시대적인 상황에 따라 또는 이념이나 정책에 따라 다양해지고 극심한 변화를 겪게 된다.
민족예술이 뜨면 걸개그림이 뜨고 정치적 구호가 뜬다.
감성적으로 평가 받아야 할 예술이 정치와 사회적 풍조에 편승해 이성적 판단으로 재단하다보니 엉뚱한 쪽으로 흐를 수가 있다는 것이다. 또 현금을 나눠주다 보니 자유로운 창작 환경을 조성한다는 근본 취지가 어느새 지원금 배급현상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공정분배의 원칙이 무너지고 너도 나도 지원금 배급 받기 전략만이 살아남는다.
예술 정책은 복리정책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이번 국회에서 지금까지의 지원제도의 틀을 바꾸기 위한 문화예술지원 원칙이 제시되었다.
지원 대상 선정방법이 크게 바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단순한 지원 대상 선정만 변경할 것이 아니다.
제도를 악용하는 편법사례는 어느 분야 어느 규정에서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덕적 자정 능력에 기대를 걸고 있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보인다.
유명교수들의 논문 복제가 한동안 세상을 어지럽게 했다. 창작물의 재탕, 삼탕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이름에, 명성에 함몰된 채 생색내기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덕적 해이를 단죄할 수 있는 제도도 마련해야 한다.
예술계에 만연하고 있는 각종 파벌, 배타적 이기주의와 학연, 지연으로 연결되는 끼리끼리 심사 등 견제와 비판기능이 마비된 예술계에 새로운 기운이 일어나 주기를 기대한다.
어쩌다 작품 한편의 성공으로 평생을 예술가 입네하고 목에 힘만 주고 살아온 사람들과 끊임없는 창작열로 지속적인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다수의 무명작가들도 구별이 돼야 한다. 같은 작품 하나를 슬쩍슬쩍 제목 바꾸고 출품시기 바꿔 가면서 평생을 우려먹는 작가들이 그 이름 하나로 지원금 단골 수혜 대상자가 되는 일은 이제는 정말 사라져야 한다.
또 이들 수혜 대상자를 선정하는 공직자들의 시각도 달라져야 한다. 공평한 균등지원이라는 안일한 인식으로는 진정한 예술 지원정책의 실효를 거둘 수가 없다.
지원금이라는 보호 안에 안주하려 하다보면 결국은 지원금 정책은 언 발에 오줌 누기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현 지원제도가 문화예술계의 큰 보탬이 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