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들이 가장 꺼리면서도 그 학문의 기초를 튼튼히 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분야가 인용빈도가 높은 기본 문헌 원전을 교감하는 일이다.
원전 교감이란 말 그대로 원전이라고 할 수 있는 텍스트가 판본에 따라 각기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한 글자 한 글자 대조해 내는 것은 물론 이를 토대로 가장 타당성 있는 글자를 확정하는 작업을 말한다.
이 작업이 가장 긴요하게 요청되는 한국학 문헌이 「삼국유사」라고 할 수 있다. 「삼국유사」에는 이런 작업이 왜 더 필요한가.
첫째, 「삼국유사」는 관에서 편찬한 관찬(官撰) 문헌이 아니다. 개인이 저술한 사찬(私撰)이기 때문에 원전 인용 등에서 실수나 탈락, 잘못된 글자 등이 상대적으로 더욱 빈발하게 발견된다.
둘째, 「삼국유사」는 중앙보다 지방에서 자주 발간됐기 때문에, 이에 따른 오(誤).탈(脫).결(缺).락(落)이 더욱 심하다.
여러 판본에 따른 이러한 차이가 대수롭지 않은 경우도 있으나, 어떤 글자로 판독하느냐에 따라 그 해석이나 의미가 크게 달라지는 경우도 부지기수에 달한다.
예컨대, 「삼국유사」를 구성하는 여러 편(篇) 중 가장 먼저 나오는 '왕력'(王歷)을 보면, 신라 제20대 자비마립간(慈悲麻立干)에 대해 "妃巴胡葛文王女"라는 구절이 있다. 문맥대로라면 "(자비왕은) 비가 파호갈문왕 딸이다"로 해석하는 것이 지극한 순리다. 이에 따른다면 자비왕비는 정확한 이름은 알 수 없으나 파호라는 갈문왕의 딸이라는 뜻이다.
한국고대사 연구자는 모두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그에 따라 파호(巴胡)가 과연 누구인가를 찾아나서, 내물왕 세 아들 중 한 명인 복호(卜好)라는 사람과 발음이 비슷하다고 해 파호는 아마 복호의 다른 표기일 것이라는 주장이 꽤 그럴 듯하게 통용되고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삼국유사」 왕력 편에 보이는 '妃巴胡葛文王女'에서 파호는 왕비의 아버지 이름이 아니라, 왕비 그 자신의 이름임이 최근에 밝혀지고 있다. 다시 말해 '妃巴胡葛文王女'는 '妃巴胡, ◆◆葛文王女'의 잘못이었던 셈이다. 자비왕비 파호의 아버지 이름이 들어가야 글자가 어떤 연유로 탈락해 버림으로써 왕비 이름이 왕비 아버지 이름인 것처럼 둔갑한 것이다.
최근 고려대에서 「삼국유사」 판본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하정룡씨가 낸 「교감 역주 삼국유사」(시공사)는 이 문헌 판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생각되는 조선초 고판본(古版本)을 저본으로 삼아, 조선 중종 때 나온 소위 '임신본'(壬申本) 등 후대 판본을 한 글자 한 글자 비교하고 교감하고 있다
또 이체자(異體字)라고 해서 본래는 같은 글자이지만 여러 변형 글자에 대해서도 세밀한 분석을 했다. 교감자의 주장 중에서 특히 눈여겨 볼 것은 흔히 고려 때 일연이 찬한 것으로 알려진 「삼국유사」가 처음 책으로 찍혀 나온 시기는 아무리 빨라도 조선 건국 2년 뒤인 1394년을 넘지 않는다는 대목이다.
이런 주장이 사실이라면, 「삼국유사」 연구는 아예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조선시대의 텍스트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데 교감자의 주장이 어느 정도 학계에서 지지를 받고 있는 듯하다.
한국서지학계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천혜봉 성균관대 명예교수 또한 비슷한 견해를 발표한 바 있다. 689쪽. 2만2천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