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 선택제에 대비하기 위한 현장학교들의 노력들이 언론을 통해 제법 심심찮게 보도되고 있다. 동문들이 자신들의 모교를 소위 명문학교로 만들기 위해서 발 벗고 나섰다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강남의 어떤 고등학교에서는 선호학교가 되기 위해서 벌써부터 점심시간을 줄여가면서까지 공부를 시키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어떤 학교에서는 좋은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공모하고 있기도 하고, 또 학교 내에 학교발전위원회와 같은 형태의 기구를 만들어 특색 있는 교육과정을 개발하거나 아니면 ‘방과후학교’의 효율적 방안 등을 모색하기도 한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봤자 이런 노력들은 대학진학률을 높이기 위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교육수요자들이 학교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대원칙에 반대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만약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공산주의나 전체주의 체제에서 온 사람일 게다. 학교의 교육정보가 공개되고 아이들은 자신의 교육적 필요에 따라 학교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이 원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강조하는 교육의 중요한 원리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교육수요자들의 학교 선택지가 얼마나 많은가에 있다.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교육수요자들의 선택폭이 넓으면 넓을수록 학생들의 교육 만족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직업에 따라, 학교가 추구하는 교육이념과 철학에 따라, 학생들의 학력 수준에 따라, 학교의 기능에 따라 다양한 학교의 형태가 있어야 그만큼 교육수요자들의 교육적 요구가 다양하게 수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교의 모습이 너무 획일화되어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인문계, 실업계, 특목고, 국제고, 마이스터고 등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름만 다를 뿐이지 교육이 추구하는 목적이나 활동에는 별반 차이가 없다. 획일화된 학교 사회 속에서 학교 선택제를 실시하면 학생들은 당연히 치열하게 경쟁할 수밖에 없고, 학교는 당연히 명문대 진학률을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 않겠는가?
뿐만 아니라 교육성과지표에 대한 인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교육성과란 교육의 결과 내지는 교육의 효과라는 말로 이해하면 된다. 가장 대표적인 교육성과지표의 예가 바로 PISA성적이다.
교육수요자는 물론 학교와 정부가 교육성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교육성과지표를 바탕으로 학교교육의 현실이 어떠하고 또 교육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학교교육에 대한 성과를 살펴보는 일은 학교교육 전반에 대한 반성적 활동인 동시에 앞으로 학교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하는 일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에서도 현재 학교교육의 성과지수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교육학적 관점에서 교육성과를 이해하면 학생들의 학력향상과 인성, 도덕성, 사회성 그리고 진학, 취업 등이 교육성과 지표의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리고 얼마만큼 교육에 투자를 했는데 어느 정도의 교육적 효율성을 가져왔는지 교육투자의 수익률을 산출하여 교육성과를 평가하는 일은 경제적인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는 교육성과의 관점이다. 뿐만 아니라 교육을 사회화의 과정으로 보고 사회정책적 차원에서 교육의 기회 균등화 문제, 교육의 양극화 문제, 교육복지의 문제 등을 평가하는 일도 교육성과 지표 개발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참으로 서글픈 현실은 현재 연구하고 있는 교육성과 지표 자체도 획일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제시한 2차 우리나라 교육성과 지표(안)을 들여다보면, 학교교육 성과지표를 측정하기 위해 학업, 인성, 자기계발, 학교만족도, 학교수상 및 인증, 학생보유력 등 여섯 영역으로 나누고 각 영역마다 하위영역을 두어서 학교교육의 결과를 산출하고자 한다.
그런데 실제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교육현장에서는 교육성과의 모든 기준이 학력 향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그 외 다른 영역은 학력 영역의 보조수단에 불과하거나 아니면 형식적인 지표에 지나지 않고 있다.
학교의 모습도 획일화되어 있고, 학교에서의 교육활동도 획일화되어 있고, 그 교육에 대한 성과를 측정하는 기준도 획일화되어 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학교선택제가 곧 본격적으로 실시된다고 하는데, 솔직히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선다. 학교 선택제가 지향하고 있는 기본 정신이 아무리 올바르다고 할지라도 이를 실현하는데 필요한 제반 조건들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도로아미타불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교육의 희망을 볼 수 있는 이유는 다양한 학교 형태를 띠고 있으면서 학생들의 다양한 교육적 수요들을 수용하고 독특한 교육과정과 학습방법으로 교육의 본질적 가치들을 추구하고 있는 대안학교들이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