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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 창씨개명

이창식 주필

아소타로(麻生太郞·68) 일본 자민당 총재가 제92대 총리대신에 취임했다. 그는 후쿠오카 출신으로 미국 스탠퍼드대학원과 런던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취미는 만화책 읽기와 골프(싱글)이며 부인과 1남 1녀를 두고 있다. 아소는 중의원 3선으로 1996년 경제기획청 장관으로 첫 입각한 이래 총무대신, 외무대신, 자민당 간사장을 두루 지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때는 클레이사격 일본 대표로 출전해 41등을 했고, 일본 농구협회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그는 총리 취임식에서 “일본을 아름답고 밝은 나라로 만드는 것이 나의 사명이다.”라고 말했다. 그 꿈이 실현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일본은 세습정치가 일반화된 나라이다. 아소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요시다시게루(吉田茂) 전 총리가 외조부이고, 역시 전 총리 스즈키젠코(鈴木善幸)가 장인이다. 아소가 명문가 출신인데다 다방면에 걸쳐 풍부한 경험과 역량을 인정받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는 “창씨개명(創氏改名)은 조선인들이 스스로 원해서 했다.”는 망언 때문에 혐한(嫌韓) 인사로 꼽히고 있다. 내선일체(內鮮一體)를 내세운 창씨개명은 1940년 2월 11일 전국에서 일제히 강행됐었다. 말로는 일본인과의 차별을 없앤다고 했지만 호적에 본래의 성과 본관을 표시하고 본적지 이전을 금지시켰다. 창씨개명이 부진하자 면사무소에서 마음대로 성과 이름을 바꾸기까지 했지만 마감일인 1941년 8월 10일까지의 실적은 81.5%에 불과했다. 창씨개명을 안 한 소년은 학교에 다닐 수 없었고, 다닌다해도 교사로부터 학대 받았다. 직장인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창씨개명을 거부한 주민은 식량배급에서 제외돼 당장 먹고 살기위해 벼락치기로 이름을 바꾼예도 없지 않았다. 끝까지 버티다 굴복한 사람 가운데는 ‘이누쿠소구라에(犬糞食衙):개똥이나 먹어라’, ‘덴노헤이카(田農炳夏):천황폐하’ 따위로 창씨개명해 일제를 비난한 극렬 인사도 있었다. 아소는 일본 총리가 됐지만 한국인을 폄하하고 진실을 왜곡한 과오에 대해 사죄하지 않는 한 우리와는 가까운 일본인이 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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