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의 여러 왕릉(王陵) 중 가장 많은 숫자를 가지고 있는 지역이 고양, 구리, 화성 등 경기도에 집중되어 있다.
영월 단종 대왕의 장릉을 제외하면 조선시대의 모든 능은 서울과 경기도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조선시대의 왕릉들은 다른 나라의 장묘문화와는 확연하게 그 구성 및 내용이 다르고 또한 수백년 간 국가에서 대대적으로 보존해 오고 있어 일부지역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원형이 잘 보전되어 있다.
이 외의 석물적 가치나 조성방법, 의궤와 같은 기록을 통하여 왕릉에 대한 역사학적 연구는 비교적 잘 이루어져 그 문화재적 가치를 높여 주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문화재적 가치로 인하여 조선조의 능과 원 등은 국가에서 사적으로 지정하여 관리보존하고 있으며 현재 문화재청에서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고양시 지역에 소재한 총 9기의 조선조 조성 왕릉에 대해 관심을 가져온 필자도 조선 왕릉의 세계문화유산적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풍수 및 왕릉 내의 조경, 국조오례의와 같은 당대의 정확한 기록, 전주이씨 종약원과 같은 명확한 보전 단체 등 여러 면에 있어 조선조의 왕릉은 인류가 보전해야 할 가치 있는 문화유산이다.
다만 한 가지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있어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무형의 문화유산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왕릉제례(王陵祭禮) 행사 이다.
현재 조선조의 왕릉과 원 중에는 현실적으로 제례를 봉행치 못하는 곳이 여러 곳 있다. 일부 지역은 일반인의 접근이 불가능한 곳도 있을 정도다.
이와 유사한 예가 바로 고양시 서삼릉 경내에 있는 효릉(孝陵) 제향이다. 효릉 제향은 단절되었다가 복원된 제향이라는 점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관심 속에 제례가 봉행되고 있다. 서삼릉 역시 요즈음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현장 실사를 받고 있는 지역이다.
우리나라의 왕릉 중 그 주변지역이 가장 많이 변형되고 훼손된 곳 중 한곳이 바로 서삼릉 내 효릉이다.
풀이 자라는 목장 사유지 등 여러 이유로 인해 현재 비공개 지역으로 일반인의 접근이 통제되고 있는데 효릉제향 때만은 전면 공개되고 있다.
효릉은 조선조 제 12대 인종(仁宗) 대왕과 그의 비인 인성왕후 박씨를 모신 능인데 형식은 쌍릉(雙陵)구조를 이루고 있다.
인종대왕은 왕 재위 8개월 만에 돌아가시고 후사가 없어 현재 왕릉제향은 전주이씨 종약원 고양시 분원 효릉봉양회가 주관하고 있다.
효릉 제향의 시작은 옷을 갈아입은 후 황 등을 따라 신도와 참도로 이동해 정자각에 이른 후 집례의 진행과 상례의 주도로 치루어 진다. 초헌례와 아헌례, 종헌례, 음복례, 망료례 등이 절차와 예에 따라 질서 있게 진행된다.
모두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왕릉제가 가지고 있는 권의에 알맞게 약 1시간에 걸친 전통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일반 제례와는 여러 가지가 다른데 제수품은 물론 합보의 형식, 술을 올리는 헌작 및 축문, 정자각 내에서의 진행 등 고유의 전통과 독특한 제례 특징에 있어 그 무형 문화적 가치는 매우 크다.
특히 효릉의 경우 전주이씨의 후손들 이외에도 지역주민들이 함께하고 제가 끝난 후 효릉에 대한 역사적, 문화재적 가치를 소상히 안내하고 답사하는 모습에서 그 보전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이 엄숙하고 큰 대제(大祭)에 제례악(祭禮樂)이 빠진 점은 앞으로 최우선으로 보완해야 할 것이다.
서울 종묘(宗廟) 제례 시 제례절차 및 복장 등과 함께 제례악과 문무(文武)를 상징하는 춤이 함께하여 세계무형의 문화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 좋은 예이다.
이제 조선조에 행하던 왕릉제례를 보다 면밀히 연구, 분석하여 원형대로 복원하고 이를 많은 국민들이 볼 수 있도록 기획하며 후손들이 계승할 수 있도록 교육한다면 우리는 또 하나의 소중한 무형문화유산을 가지는 문화강국이 될 것이다.
앞으로 유형의 왕릉에 대한 문화재 당국의 노력 만큼이나 자칫 사라질지 모르는 왕릉의 무형 문화재와 전통제례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이루어지길 간곡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