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 한국 영화계의 역사를 새로 쓴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가 있었다. 개봉 3개월 여 만에 1100만명 이상의 관객이 찾아들게 한 이 영화는 우리 민족사의 아픔 중의 하나인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진태(장동건 분)와 진석(원빈 분)의 가슴 절절한 형제애를 다룬 이 영화는 개인의 삶이 한국전쟁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굴절되어갈 수 있는지, 특히 동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기꺼이 할 수 있는 형 진태의 모습 속에서 사상과 이념이라는 거창한 그 무엇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한국전쟁의 이면을 볼 수 있는 영화였다.
4년이 지난 지금, 뜬금없이 이 영화가 떠오른 이유는 이 영화에는 진태의 애인인 영신(고 이은주 분)이 쌀을 준다는 얘기에 보도연맹에 가입하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전쟁 중에 쌀은 곧 생명이나 다름이 없다. 생명을 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그 행위의 결과가 어떨 것인가를 생각하기 이전에 영신과 같은 행위를 했을 것이다.
지난 주 고양시에서는 영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국민보도연맹사건과 맥을 같이 하는 ‘고양금정굴학살 희생자 제58주기(제16회) 위령제전’이 있었다.
고양금정굴학살은 1990년 한 개인의 향토사 발굴 도중 우연히 알게 된 학살 사실을 바탕으로 고양지역의 시민단체들이 금정굴사건진상규명위원회를 결성하고 1993년에는 전쟁 중에 가족을 잃었지만 왜, 어떻게 죽었는지 조차 모르고 지내던 유족들이 모여 유족회를 결성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역사적 사실로서 공식화되었다. 1995년 집단학살이 이루어졌다는 금정굴에 대한 1차 발굴 작업이 진행되었고, 이 발굴 작업을 통해 희생자가 160명 이상이며 이중에는 어린이도 포함되어 있음이 밝혀졌으며 2007년 6월 국가기구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결정을 통해 사건의 진상이 규명되었다.
이 진실규명결정에 따르면 고양금정굴은 1950년 국군의 고양·파주지역 수복 이후 경찰이 지역주민 중 인민군 점령시기에 부역한 혐의가 있는 자와 부역 혐의로 행불 또는 도피한 자의 가족을 연행해 지서, 치안대 사무실, 창고 등에 구금하였다가 3~7일간의 조사를 거쳐 10월 9일부터 한 번에 20~40여 명씩 금정굴로 끌고 가 총살하고 암매장한 사건이다.
이 분들이 희생된 지 58년째인 2008년 올해 위령제에서는 당시 학살을 주도한 고양경찰서장을 대신해 어청수 경찰청장이 유족들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를 했다. 물론 경찰청장이 직접 하지는 못하고 서한을 대독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지기는 했으나 공권력에 의한 불법적인 집단총살로 인해 민간인들이 희생되었음을 인정하고 공권력의 의미와 역할을 새롭게 조명하는 자리였다는 점에서는 그 동안의 위령제와는 사뭇 다른 의의가 있는 자리였다.
역사 속의 불법적인 공권력에 대한 사과와 반성이 이루어지는 오늘, 오늘의 공권력은 과연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최근 촛불집회와 관련해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 네티즌에 대한 탄압, 유모차부대에 대한 수사, 단체들에 대한 강제 수사 등 오늘의 공권력이 벌이고 있는 일들은 진정으로 역사에 대한 반성 속에서 다시 태어나고 있는 공권력이 맞는지 의심스럽게 한다.
나는 최근 벌어지는 사건들을 보면서 술집에서 정권에 대한 비판적인 얘기를 했다고 잡아 가두던 유신정권 시절이 이랬을까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특히 아이들의 건강과 미래를 걱정하는 엄마들의 자발적인 정치행위조차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유모차부대에 대한 수사를 보면서 우리 사회가 개인의 존엄과 자유를 보장하는 사회가 맞는가 하는 두려움까지 밀려온다.
과거의 반성과 오늘의 현실이 따로 일 수 없다. 왜 우리가 반세기를 더 넘긴 오랜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그토록 오랫동안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에 대한 역사적 정리를 바로 하고자 하는 것인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고양금정굴학살사건이 58년 전의 일개 사건 또는 역사가 아닌 이유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특히 공권력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중요한 교훈과 시사점을 주기 때문이다.
공권력은 개인의 자유와 존엄, 그리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만 행사될 수 있다. 오늘의 공권력 주체들은 그 사실을 늘 기억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