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20 (일)

  • 흐림동두천 23.0℃
  • 흐림강릉 20.8℃
  • 서울 27.9℃
  • 구름많음대전 28.0℃
  • 흐림대구 27.6℃
  • 구름많음울산 25.5℃
  • 구름조금광주 28.6℃
  • 구름조금부산 28.2℃
  • 구름조금고창 28.4℃
  • 구름많음제주 29.8℃
  • 흐림강화 26.6℃
  • 구름많음보은 23.2℃
  • 구름많음금산 27.2℃
  • 구름많음강진군 29.6℃
  • 구름많음경주시 26.8℃
  • 맑음거제 28.6℃
기상청 제공

[특별기고] 수원에 가면 서예박물관이 있다

‘애국지사 100인 유묵전’지원
숨쉬는 박물관 기능 충실을

 

10월 1일 날씨 쾌청(快晴). 쩡쩡 얼음 갈라지는 소리가 날것 만 같다. 맑고 투명하다. 오랜만에 만나는 진짜 가을하늘이었다.

종로에서 성남 방면으로 경기지방경찰청을 좀 지나 왼쪽으로 한국서예박물관에 이르는 작은 언덕에는 서예박물관에 기증한 국내 서예가들의 혼과 백 그리고 열정이 담긴 서예작품을 실사(實寫)한 수 백의 대나무 깃발이 만장의 행렬처럼 도열해 있었고 개관식에 모여든 시민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았으며 모두가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전국 최초로 지방자치단체 테마박물관 ‘한국서예박물관’ 개관식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수많은 서예인과 시민들이 모였다. 필자는 이처럼 많은 서예인구에 놀랐고 우리나라 유명 서예인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게 한 그 저력에 또 한번 놀랐다. ‘인연,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이렇게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구나’하는 작은 감동이 가슴을 설레게 했다. 2003년인가, 그 즈음 필자가 사무총장으로 있던 경기문화재단에 중진 서예가이자 근당현대서예연구원 원장인 근당 양택동 선생이 찾아왔다.

지역사회 기여도나 많은 봉사활동을 통해 서로를 잘 알고 있는 터여서 허심탄회한 대화들을 많이 나눴던 것으로 기억된다.

또한 그 자리에서 ‘애국지사 100인 유묵전’을 지원사업으로 결정한 바 있었다. 당시 필자는 유묵전을 보면서 처음으로 예술로써의 서예, 철학으로써의 서예를 알게 되었고 그 신비한 먹(墨(묵))의 세계에 잔잔한 감동을 받았던 터였다.

당시 근당이 진지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총장님, 조부님과 아버님 그리고 저, 3대에 걸쳐 우리 서예계를 대변할 수 있는 근·현대 서예작품이 한 만 여 점 됩니다. 이 많은걸 저 혼자 계속 보관하기도 그렇고 더 넓게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수원 인근 시(市)로부터 ‘효 박물관’을 건립할 테니 기증 해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는데 총장님 생각은 어떠신지요?”라는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당황스러웠지만 묘한 흥분에 사로 잡혔었다. 잠시 생각 끝에 필자는 근당 선생에게 “근당의 고향이 수원이고, 누구보다 수원에 대해 잘 알고, 누구보다 수원을 아끼는 사람이니 수원시에 기증을 하면 어떤가, 내가 수원에 꼭 서예박물관을 세우겠네”라고 답을 건넸다.

이후 필자는 ‘과연 수원에 서예박물관이 들어 설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사나흘 고민하면서 한편으로는 앞으로 전개될 막연한 공상에 사로잡히던 와중에 문득 김용서 수원시장이 떠올랐다. ‘김 시장이라면 틀림없이 서예박물관을 세울 수 있다’라는 확신이 섰다. 김 시장의 저돌적인 업무추진 능력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원은 누가 뭐래도 문화의 도시요, 역사의 도시이다. 세계문화유산도 중요하고 유네스코도 좋은 일이지만 우리에게 무엇보다 수원 화성이 있고, 정조대왕이 있고 그래서 수원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떼어 놓은 수원은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유령의 도시가 될 터였다.

얼마 후 김 시장을 만난 자리에서 근당 선생의 서예작품 기증에 관해 말을 했더니 김 시장이 반색을 하며 무릎을 탁 치고 나왔다.

이미 김 시장의 머릿속엔 국내 자치단체에서는 최초로 설립하게 될 테마박물 ‘한국서예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후 진행은 일사천리였다. 앞으로의 계획과 기증 절차를 밟아 나갔다. 여기까지가 필자와 근당, 김 시장 그리고 서예박물관의 오묘한 인연이었다.

그로부터 4년 뒤 오늘을 만났다.

서예박물관 입구부터 도열한 깃발을 보면서 ‘수원에 가면 서예박물관이 있다’는 포만감에 어깨가 으쓱거림을 느꼈다. 현대사회에서 박물관의 사전적 의미는 별 의미가 없다. 살아 움직이는 박물관, 박제된 작품의 전시가 아닌 숨 쉬는 박물관으로서의 기능에 충실해주기 바란다.

또 한 번 문화의 도시 수원의 향기가 온 나라 서예인들의 묵향과 함께 널리 퍼져나가길 기대하면서 오늘의 축제를 향해 “브라보! 브라보!”를 외쳐본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