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치하문(不恥下問)이란 말이 있다. 아랫사람이나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한다는 말이다.
춘추전국시대 위(衛)나라에 집정대신이었던 공어(孔圄)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매우 겸손하고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당시 사람들로부터 찬사와 칭송을 받았던 인물이다. 배움에 있어서는 신분고하를 따지지 않았으며 모르는 것이 있으면 불원천리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 도움을 청하는 겸양의 사람이었다. 이러한 태도를 높게 평가하여 공어가 죽자 위나라 군주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호학(好學)정신을 배우고 계승하기 위하여 그에게 문(文)이라는 시로를 하사하였다.
동시대 인물로 공자의 제자였던 자공(子貢)은 왜 사람들이 공어를 높이 평가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보기에는 허술하기가 그지없고 수많은 시행착오와 결점이 많은 무능한 정치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실상을 바로보지 못하고 국가가 필요 이상의 예우를 한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불만이 많았다. 집정대신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나라를 안정시키는 정치력도 갖추지 못했기에 칭송은 커녕 비난 받아야 할 인물이라고 비판하였다.
자공은 스승인 공자에게 “공어의 시호가 왜 문(文)이라고 해야 되는지”를 묻게 된다. 그러자 공자는 대답하길 “그는 영민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여 아랫사람에게도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를 문(文)이라고 하였던 것이다”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여기서 나온 고사성어가 ‘불치하문’이다.
공자는 군자의 덕목 중 행실에 있어서 다소 문제점이 있었을지라도 불치하문하는 자세를 가장 높이 평가하였다. 일 잘하는 교만한 사람보다 비록 실수는 많아도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공어에게 문(文)이라고 시호를 내린 건 적절한 일이라고 하였다.
불치하문의 자세는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불치하문은 공자가 활동하던 당시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부하에게 물어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으면 지식과 정보뿐만 아니라 존경심도 덤으로 따라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미국의 정치가인 벤자민 프랑크린이 젊은날 이웃집을 방문했다가 나올 때 주인이 말하기를 “문틀이 낮으니 머리를 숙이고 나가시오”라고 알려 주었는데도 그 말을 건성으로 듣다가 그만 머리를 부딪혀 타박상을 입게 되었다. 그때 주인이 말하기를 “젊은이, 자네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머리를 자주 숙일수록 그 만큼 부딪히는 일은 없을 걸세”라고 교훈을 주었다고 한다. 벤자민은 이 말을 평생의 교훈으로 삼아 항상 겸손이 몸에 배어 후일 그가 미국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훌륭한 인재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가르침은 항상 어른들이나 학식이 높은 사람에게만 받는 것이 아니다. 모르는 것이 있다면 아랫사람 윗사람 구별 않고 물어 내 지식을 만들고 겸손의 미덕을 쌓는 생활을 하다보면 이것이 자신에게 제일 큰 자산이란걸 알게 된다.
요즘 나이든 분들도 영어회화 학원에 다니고 컴퓨터를 배우는 경우가 많다. 배움의 기회를 놓쳐 전문성을 가지기에는 역부족이지만 아쉬운 대로 컴퓨터의 자판도 두드리고, 인터넷이라는 요술상자에서 이것저것 찾아내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활용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물론 컴퓨터의 달인이 될 수는 없어도 불치하문하려는 자세는 참으로 아름답다.
사람은 처음부터 모든 걸 통달하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아마도 사람은 평생 배우며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모르면서도 묻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아무리 선생이라도 제자에게 배울점이 있는 법이고 유식한 사람도 무식한 사람에게 취할 것이 있는 법이다. 고기를 잡는 법은 어부에게 묻고, 기술은 기술을 가진 사람에게 묻고, 경제는 경제를 아는 사람에게 묻고, 정치는 정치를 아는 사람에게 물어야 한다.
최근에 들은 이야기로 요직에 있는 사람중에 인터넷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부지기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차분히 앉아 몇 시간만 투자하면 왠만한 웹서핑은 할 수 있을 텐데 컴퓨터를 켤줄도 모르고 있다니 이런 한심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배우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모르면서도 아는 척 하는게 부끄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