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은 과학기술기본법 제27조 및 동법시행령 제41조에 의거하여 국가과학기술표준분류체계 재편을 추진하고 있다.
국가과학기술표준분류체계는 과학기술 전 분야에 걸친 분류체계를 마련하여 과학기술정책수립 및 연구개발기획 등에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2002년 제정되어 2005년 1차 개편에 이어 금년에 2차 개편을 추진하게 되었으며, 그동안 교과부와 전문가위원회에서 전체적인 재편방향을 설정하고 국가R&D사업을 추진하는 15개 부처로 구성된 TFT와 공동 작업으로 최종 가안을 마련하였다.
새로 구축된 학문분류체계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과학적 기초학문 분야에 비하여 인문사회과학 분야와 융합학문 분야의 비중이 현저하게 축소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하여 일부 학계의 연구자들은 이번 정부의 국가R&D사업을 궁극적으로 좌우하게 될 이 분류체계가 전 분야의 연구자들의 의견을 공평하고도 충분하게 개진하였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다.
교과부가 주관하고 주로 자연과학 분야의 전문가 집단, 그리고 정부 15개 부처로 구성된 TFT의 의견을 개진하여 산출한 국가과학기술표준분류체계의 최종 가안은 여전히 일부 학계의 의견이 반영이 되지 않은 채 부족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특히 가안이 나오기까지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바로 의사소통의 절차였다.
물론 그동안 관련 실무자들은 학계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하여 여러 각도로 노력을 기울였겠으나 문제는 이들 실무자들 자신이 전 학문영역을 공평하게 대표하는 전문가집단이 아니란 점이다. 만일 상황이 그러하다면 의견 개진의 절차적 문제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음을 인지했어야 하는 것이고 그와 같은 점을 인지했더라면 학계의 의견을 수집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전문학술단체들은 학문의 영역을 대표할 것이기에 학계와의 가장 좋은 의사소통 방법은 학문 분야별 거대 학회들에 공문을 보내어 의견을 수집하는 방법이다.
허나 이번 학문분류체계 재편에는 애초부터 이 같은 노력이 기울여졌던 것이 아니었다. 소수 전문가 집단과 정부기관의 실무자들이 자신들의 지식의 한계 내에서 애초 전 학문 분야에 대한 밑그림을 그렸고 그 밑그림에 추후 수거된 의견이 쌓아진 것이다. 이러다보니 실제로 현존하는 전 학문 분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균형적으로 축소해놓기보다는 어느 부분은 과도하게 상세한 반면 어느 부분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이상한 모습의 체제가 구축되었다.
이는 물론 행정 실무자의 비전문성에서 출현한 오류일 수도 있겠으나 그보다 더 나아가 일부 정책 입안자의 고의적 의도일 수도 있다. 만일 전자의 문제가 아니라 후자의 문제에 기인한 학문체제의 왜곡이라면 사실 더더욱 이 문제는 심각한 것이다. 왜냐면 지금 구축된 이 학문제체에 준하여 앞으로 4-5년간의 국가R&D사업의 연구비가 분배될 것이며, 이와 같은 4-5년간의 연구비 투자는 적어도 그 두 배 또는 세 배의 기간 동안 각 학분 분야의 구석구석까지 연구 역량을 좌우할 것이기 때문이다. EK라서 이처럼 중요한 사안을 결정할 때에는 애당초부터 여러 각도에서 의견을 물었어야 했다.
다만 행정의 효율성을 위해 의사소통 가능성을 축소하고 그것마저도 긴급하게 집행하였다면 이는 국가의 장래 4-5년, 나아가 십 수 년 동안의 발전가능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심각한 파장효과가 있는 문제에 대하여 조속히만 처리하고자 한 이번 국가과학기술표준분류체계 재편 작업은 따라서 완성도가 높다고 볼 수 없으며 바로 이 점을 고려한다면 추후 보다 많은 전문영역의 의견 개진과 공청회 등을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노력은 결코 행정상의 낭비가 아니며 바로 이 같은 절차를 통해 국민이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가 실현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사안이라도 국민에게 소소히 알리고 이해시키고자 하는 노력, 그리고는 열린 의사소통, 그에 따른 정책 수정 등이 바로 이 정부가 이루어야 하는 행정적인 혁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