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에게 불의 발견과 이용은 원시적 생활에 상대하여 문명 그 자체다. 구석기시대로부터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월등한 존재로 이 지구상에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도 된다. 이는 식생활의 변화와 인류의 활동시간대를 밤까지 확대하는데 크게 영향을 미쳤다.
그 시작은 초창기에 만든 횃불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횃불을 싸리나무나 겨릅대, 갈대 등을 묶어서 만들었는데 후에 불을 좀 더 오래 타게 하기 위해서 기름이나 관솔을 넣어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횃불은 편의상 야외에서만 가능하였고 결국 실내에서도 사용할 등불이 만들어졌다.
등불은 식물성 기름이나 동물성 기름을 도자기나 사기. 대리석, 철제로 된 등잔이라는 작고 납작한 접시에 담고 솜이나 실, 종이 등을 꼬아서 만든 심지를 박아 그 심지에 불을 붙여 사용했다. 그러니까 등 안에다 초를 넣은 것을 초롱이라 하고 등잔을 넣은 것은 등롱이라 했다. 이 외에 부엌등, 주막등, 초상집을 알리는 발등거리 등, 임시로 쓰기 위해 대충 만들어서 내걸기도 했는데 주로 동양문화권에서 사용되었다.
동서양이 다 이용한 고급 조명기구는 촛불이었다. 촛불은 등불이나 횃불처럼 번거롭지 않아서 불교와 기독교의 경건한 의식에도 많이 사용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동양은 기원전 3세기 말 한나라 고조 때 민월왕이 밀초 200개를 바쳤다 하며 이 무렵, 서양도 오르비에트의 골리니 분묘벽화에 촛대와 초가 그려진 그림의 기록이 있다.
이 요긴하던 등불이 퇴보한 것은 1879년 에디슨이 열에 의해 빛을 발산하는 백열전구를 발명한 때문이다. 우리 나라가 조명의 역사만큼 환해진 것은 새마을운동 때이다. 새마을운동과 함께 마을마다 백열전구가 보급된 것이다. 덕분에 한국사회도 획기적으로 변화했다. 바야흐로 그 백열전구도 역사를 접고 곧 사라진다. 에너지 낭비가 크다는 이유로 오는 2013년까지 시장에서 퇴출된다. 우리 앞에 놓인 힘든 시대를 함께 헤쳐나온 백열전구, 이제 그 백열전구도 우리 곁을 떠나간 수많은 이기의 하나로 남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