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골집이 있으면 뭔가 푸근하다.
특별한 볼 일이 없어도 오가다 들리고 하여간 있으면 푸근하고 없으면 섭섭하다.
기껏 남자들에게 단골집이라고 해봐야 여자들과 달리 퇴근길에 들르는 호프집이나 이발소,목욕탕... 다섯 손가락 안이다.
좀 한가로울 때 슬리퍼를 신고 운동복 차림으로 어슬렁거리면서 단골 목욕탕을 찾아 나서면 몸도 마음도 여유로워진다.
나 같은 경우 이발소가 있는 목욕탕을 가는데 오천원 남짓으로 이만한 포만감(飽滿感)을 얻는 게 어디 또 있을까?
단골이 되고 나면 좋은 것이 또 있다.
덤으로 얻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다.
정치,경제,문화 가릴것 없이 날카롭게 비판해 듣는이로 하여금 스트레스 해소에 아주 큰 보약(補藥)이 된다. 하기야 그들에겐 거칠 것이 없다. 성역(聖域)이 있을 수 없기에 더욱 시원시원하고 육두문자(肉頭文字)를 써도 형용사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동네(동리) 소식을 훤하게 꿰뚫고 있다. 특히 잘못 걸리면 대대로 가성(家性)까지 의심을 받는다. 동네 목욕탕 구성인원을 보면 돈 받고 표 끊어주는 접수계,때를 밀어 주는 세신원(洗身員),그리고 이발사,청소하는 사람... 대략 네다섯명 정도인데 이중 한 사람만 친해도 단골 목욕탕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2년가량 동네 목욕탕을 다녔는데 나는 이발소 주인과 가장 친했다.
잠시도 쉬지 않는 몸놀림이 굉장히 재빠른 사람이다. 그리고 손님의 주문보다 자기 주장(主張)이 강하다. “사장님의 헤어스타일은 이러저러 하기 때문에 옆을 살리고 뒷머리를 어떻고...”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매만진다. 그것도 맘에 든다.
전문가(專門家)라고 자처하면서 일일이 “어떻게 깍아 드릴까요?” 이건 순전히 면피용(免避用) 영업이다. 내가 아는 이 주인은 단골손님이 많다. 그리고 손님들과 잔잔한 화제가 끊이지 않는데 특이한 건 한여름에도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단정하게 매고 일을 한다.
아무리 냉방시설(冷房施設)이 잘 돼 있더라도 보통 사람들이 정장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발이 끝나면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손님이 많아 기다렸을 경우 “기다리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절도있게 허리를 숙인다.(사실 수고란 아랫사람들에게 하는 인사인데) 그리고 상대방 직업이나 나이 등 아무리 궁금한 게 있더라도 절대로 먼저 묻지 않는다.
출장(出張)을 다녀오거나 다른 일로 뜸했을 경우 “오실 때가 됐는데 기다렸습니다.” 매사 싱글벙글 웃으며 이 처럼 관심을 보이는데 단골이많을 수 밖에 없다.
또 자신도 어엿하게 사업자등록증을 내 건 사장임에도 불구하고 한가할 땐 거울을 닦거나 이리저리 널부러진 목욕탕 수건을 정리하거나 자기소관(自己所管) 일도 아닌데 아무튼 잠시도 쉬는 법 없이 바쁘다.
점심을 뒤로 미루면서 동료들에게 빨리 점심 먹으라고 권하고 때로는 슬쩍 다가와서 “오늘 때 미는 손님이 너무 없으니...”하며 주제넘게(?)때밀이 수입까지 챙긴다.
어쨌든 보기에 참으로 좋은 심성을 가진 사람이다. 지난 여름 이 양반이 휴대전화 번호를 가르쳐 달라고 했는데,무엇 때문이냐고 물었더니 “다른 곳으로 옮길 것 같은데 장소가 결정되면 연락을 드려서 계속 모시고 싶다”고 했다. 사실 전화번호를 가르쳐 준다는 것이 조금은 꺼림직 했지만 대학노트에 빽빽하게 적은 다른 사람들의 번호를 보고 별 생각 없이 일러 줬다.
그로부터 보름정도가 지났다. 이발도 해야 되고 궁금했는데 문자가 찍혔다. 언제 어느 곳에서 개업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새로 옮긴 곳이 호텔 지하였는데 매우 썰렁했다. 엄청난 규모의 사우나인데 손님이 서너명 됐을까? 반갑게 맞이하면서 VIP 카드도 만들어 주고... 그 뒤 계속 그 호텔 이발관을 이용하게 됐는데(동네 목욕탕 이발요금과 같음),한달이 지난 후 부터는 기다리지 않으면 곧바로 이발을 할 수없을 정도로 붐볐다. 덩달아 사우나도 손님이 많아 졌다. 목욕을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손님 두 사람이 “야 기가 막힌다.이발사 한 명이 호텔 사우나를 살렸다.저 사람이 오기 전엔 사우나에손님이 없어서 곧 문을 닫을거라고 했는데 말이야...”하는 대화 내용이었다.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그것이 바로 주인 의식(主人意識)이다. 단정함과 친절함,그리고 주위를 배려(配慮)하는 마음,부지런함이다.
결국 이발사 한 명이 망해가는 호텔 사우나를 살린 것이다. 과연 호텔 주인은 이발소 사장의 능력을 알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몰랐다면 운이 좋은 사람이다.
좀 거창하지만 ‘인사(人事)는 만사(萬事)’ 라는 말이 떠올랐다. 작은 것에 가까운 곳에서 배우는 내 자세도 대견(?)스러웠다.
본시 선생님은 먼 곳에 있지 않다.
가깝고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