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낳아주신 어머니를 생모(生母)라고 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가 다시 맞아들인 어머니를 계모(繼母)라고 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의 생명을 만들어 주신 어머니를 생모, 불행하게도 생모가 돌아가시거나 혹은 생존해 계시더라도 또 다른 어머니의 존재를 계모 또는 서모라 호칭을 하지만 계모는 글자 그대로 작고하신 생모의 대를 이어 족보와 호적에 오른 어머니를 말한다.
생모가 훌륭하고 존경스럽지만 계모도 그와 못지않게 훌륭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껴 본다.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을 어디에 비유할 수는 없지만 내 밑에 어린 철부지 동생들을 키워주신 어머니의 정성이야 말로 정말 훌륭하고 소중할 뿐이다.
지난 17일 밤 12시40분경 병원에 입원하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숨은 멎었지만 마지막으로 인공호흡기를 대야할지 장남의 의사를 묻기 위한 의사의 전화였다. 당시 필자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지금 어떠한 상태냐고 반문하자 숨이 멈췄다고 하기에 그대로 모시라고 하고는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다.
어머니는 평상시처럼 눈을 감고 편안히 누워 계셨지만 이미 세상을 떠나신 몸이었다. 이 순간이야말로 꿈인지 생시인지 너무나 허망할 뿐이었다.
전날 밤 연말이라 몇몇 저녁모임을 끝내고 10시30분경 병실을 찾았을 때는 의사선생님이 한숨을 돌렸다기에 간병인에게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하고 우리 두 내외는 집으로 들어왔다. 불과 3시간 사이에 생과 죽음의 시간이 바뀐 것이다. 정말 허무하고 인생무상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나이 22살(1959년) 때 시골에서 칠남매를 낳아 온갖 고생을 하시면서 아들딸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서 훌륭한 사람 되라는 것이 부모의 소망이지만 사람의 명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인명은 재천이란 말이 생긴 것 같다.
생모 나이 42살 때 우리를 남겨두고 떠 나신지가 49년이 되는 해이다. 그리고 그 이듬해(1960년) 새 어머니를 모신지 48년째 되는 해이다. 새어머니께서는 1년 6개월 전에 간암말기 진단을 받고 병원을 드나드셨고 항암 치료를 받으시면서도 큰 고통을 표현하지 않으셨지만 나에게는 항상 많은 부담으로 느껴왔다.
48년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이었지만 우리 7남매를 키워주시고 감싸주셨던 새어머니의 정을 생각하면서 너무 측은하고 불쌍한 생각으로 신문에 기고문을 낸 적이 있었다. 항상 부모에게 잘 해야지 하면서도 바쁜 세상을 살다보면 효도라는 두 글자는 잊혀지게 되는 것인지 정성이 부족해서 인지 항상 마음속으로 죄송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철이 들게 마련이다. 사람이 한세상 살다보면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고 어려운일과 힘든일, 온갖 풍상을 다 겪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지 싶다.
우리 칠남매를 키워오면서 새어머니께서는 도망갈 생각에 보따리를 쌌다 풀었다를 몇 번 하신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을까! 그러나 그 고통과 어려움을 참고 견디셨기에 우리 칠남매가 이렇게 꿋꿋하게 잘 자라서 어머니의 마지막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지 않은가?
이번 장례를 치르면서 곤혹스러운 일이 있었다. 고인의 연세가 몇이시냐고 묻는 데는 항상 당황스럽기만 했다. 제발 그런 인사는 하지 않았으면 했지만 우리 사정을 물으시는 조문객은 올해 몇이시냐고 묻는다. 나는 그때그때 내 마음에 없는 거짓말을 해야만 했다. 사정을 이야기 하면 말이 길어질 것 같고 해서 많이 드셨다고 또는 90세가 넘으셨다고 내지는 우리 칠남매를 키워주신 어머니라고 대답을 했지만 곤욕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사자소학(四字小學)에 이런말이 나온다. ‘부모아신(父母我身) 모국오신(母國吾身) 은고여천(恩高如天) 덕후사리(德厚似地)’즉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 그 은혜 높기는 하늘과 같으며 그 덕이 두텁기는 땅과 같다’는 의미를 다시 한번 음미해 보곤 했다. 어찌 기른 정이 낳은 정만 못하랴….
또 용주사에 소장돼 있는 정조대왕의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을 기리기 위해 비문에 새겨져 있는 부모은중경의 10가지 은혜 가운데 이런 얘기가 나온다.
‘회건취습은(廻乾就濕恩)’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 누이는 은혜. ‘위조악업은(爲造惡業恩)’ 자식을 위해 나쁜 일까지 서슴치 않는 은혜.
이런 말 하나하나가 부모에 대한 은혜이지만 자식 된 도리를 하고 사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는지 한번 되짚고 싶다.
동탄면 중리 무봉산 자락에 위치한 만의사(萬儀寺) 대웅전 무간자비의 석가여례 곁에 지장보살(地藏普薩)의 은총을 입을 이순우(李順雨) 어머니 영정(影幀) 앞에 머리 숙여 절합니다. 우리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의 그 크신 공덕과 사랑 은혜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지난 장례 때 찾아주신 조문객 여러분들께도 삼가 감사한 마음을 지면을 통해 우선 인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