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사는 빌딩 1층에 편의점이 있다.
담배와 김치,과자 등 일상에 필요한 잡화(雜貨)를 취급하는데 여느 편의점과 다를 것이 없다.
특이한 건 낮,그리고 저녁시간,야간(24시간 영업)에 사장 겸 카운터가 바뀐다는 사실이다.
며느리가 낮 근무,저녁은 아들,야간에는 시아버지가 나와 3교대로 운영한다.
아마 가장 힘든 시간은 시아버지 그리고 좀 편한 시간은 며느리가 근무하는데 가족간의 ‘장유유서(長幼有序)’ 이런 공자(孔子)식의 위계질서(位階秩序)가 파괴된 민주주의 가정이란 걸 짐작할 수 있다.
한 2년쯤 이용했으니 스스럼 없이 이런말 저런말을 건네기도 한다.
주로 퇴근시간에 들르기 때문에 며느리 되는 분과 화제를 많이 나누는데 지난해 보다 한산(閑散)한 것 같아 “요즘 어떻습니까,힘들지요?”하고건성으로 물어 봤더니 “요즘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곧 괜찮아지겠지요...”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참으로 신선(新鮮)했다.
택시를 타거나 또 식당 같은 곳에서 의례적으로 이런 질문을 해 보면 온갖 현실적인 고단함과 불경기로 인해 매출감소,물가는 오르고 끝내는위정자(爲政者)들에 대한 원망들이 쏟아진다.
기껏 위로한답시고 질문을 한 것이 오히려 그들의 부아(肺臟)만 돋운 것 같아 민망했는데...
모두 힘들기 때문에 이해할 수 밖에 없다는 관대함과 또 미래에 대한 낙관이 아닐런지...
참으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긍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사고가 확연(確然)하게 비교되는 우스개 이야기가 있다.
신발을 수출하는 회사가 아프리카에 눈독을 드리고 두 명의 사원을 출장 보내서 소위 시장조사를 했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그 회사 안에서 경력과 실력이 만만치 않아 앞으로 그 중 한 사람이 회사를 대표하는 경영자로 발탁될 것 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는데 이들이 아프리카에 도착해 보니 모두 맨발이었다고 한다.
A씨 보고서-신발 수출 불가능,이유는 전부 맨발임,결론 가능성 제로,다른 지역을 물색해야 할 것임.
B씨 보고서-황금 시장임,가능성 100%,이유는 전부 맨발임.
맨발이란 엄연한 현실을 두고서도 이 처럼 크게 다른 분석을 내리는 것을 보면 사람의 주관이란 검은색과 흰색의 간격 만큼이나 크다고 할 수 있다.
그 뒤 맨발의 가능성을 제기한 B씨가 사장이 됐다고 한다.
우아(優雅)와 우울(憂鬱)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래서 어떤 시인(詩人)은 잿빛 하늘을 우울하다고,또 어떤 시인은 우아하다고 하는가 보다.
편의점 집에 중학교 3학년 ‘한나’란 딸이 있다. 눈이 아주 크고 맑은데 그 집 문을 열고 들어 가면 첫 번째 묻는 질문이 한나는?
딸에 대한 어머니의 평가를 물어 봤다.
“참으로 심지가 깊어서 엄마인 나도 함부로 대하기가 힘들어요.”
그냥 무턱대고 자랑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人格體)로 대하는 것 같아 듣는 나로서도 기분이 좋다.
그 외에 나눈 평범한 대화 가운데 “이런 편의점은 겨울이 여름보다 매출이 줄어 든답니다.여름엔 아이스크림 같은 빙과류가 참 많이 팔리거든요.그러나 겨울에는 어묵이 원가가 크게 들지 않기 때문에 견딜만 해요.” 억지와 긍정적으로 꿰맞추는 것 같지만 하여간 밝은 심성을 엿볼 수 있다.
“요즘 담배 사러 오는 사람의 반이 처녀들이에요,참 찝찝하답니다.”
그리고 가끔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짧은 치마와 지나친 화장을 한 나어린 소녀(?)들과 내가 마주칠 때는 자기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민망해하는 표정을 볼 땐 제대로 교육을 받은 집안 출신처럼 보였다.
며칠 전 출출하던 차에 그 집 어묵에 소주 한잔이 생각나 문을 열면서 평소 버릇처럼 “한나는...” 물었더니 학원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하면서 할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입을 다물었다.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집에도 사교육비의 어두운 그림자가 깔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의 고단함을 긍정이 충만한 이 집 식구들 정도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데...
내가 어려울 때 의지하는 경구(警句)가 있다.
‘겨울이 왔는데,봄이 멀 수 있을까?’(If winter comes,Can spring be far behind?)
혼자 되새겼다.
지난 한 해 보잘 것 없는 잡문을 읽어 주신 경기신문 애독자들께 기축년(己丑年) 새해 아침에 이 말을 선물로 바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