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대통령을 비롯한 3부 수장과 지방장관들이 신년사를 발표한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였다. 대충 살펴보면 경제위기를 기회로 삼자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구구절절이 옳은 말들이고, 절망에 빠져 있는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자하는 충정도 읽을 수 있었다. 아쉬운 것은 가슴에 와닿는 말(메시지)이 별로 없었다는 점이다. 다만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청렴은 생명이요, 부패는 죽음이다.”라며 공직자의 청렴을 강조산 대목은 주목할만 했다. 공직사회가 썩어 있는 한 나라는 결코 바로 설 수 없다. 그래서 떠올리게 되는 것이 옛 시대의 청백리들이다. 맹사성(1360~1438)은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온양에서 태어나 고려 우왕때인 1386년 27세 나이에 과거에 급제한 이래 조선 세종대에 영의정을 지내다 야인이 될 때까지 숱한 관직에 있었다. 사정(私情) 때문에 여러 차례 사직하고자 했지만 번번히 허락받지 못했다. 그는 수원판관도 지냈다. 그는 비록 벼슬이 낮은 사람이 찾아와도 반듯이 공복(公服)을 갖춰입고 대문 밖에 나가 맞아들여 윗자리에 앉히고, 돌아갈 때도 공손하게 배웅하였다. 그가 우의정 시절 ‘태종실록’을 편찬했는데 세종이 실록을 보자고 하였으나 “왕이 실록을 보고 고치면 반듯이 후세에 이를 본받게 되어 사관(史官)이 두려워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반대하자 세종이 이에 따랐다. 조정의 대사를 논할 때는 비록 왕의 말이라할지라도 거부하는 과단성과 용기가 있었다. 성군 밑에 충신이 있다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그는 평소 소를 즐겨탔다. 또 항상 남루한 옷을 입고 다녀서 정승인지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오늘날의 공직자들이 중대형차(말) 대신 소형차(소)를 타고 남루한 옷을 입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품위를 지키기 위해 단정히 해야한다. 그러나 왕이 실록을 보고자할 때 반대한 것 처럼 소신이 있어야 하고, 뇌물을 멀리하면서 국민을 섬길 때 한없이 작아지는 공직자가 되어주기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