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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 결혼과 이혼

이창식 주필

결혼과 이혼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결혼할 때는 검은 머리 파뿌리될 때까지 살듯이 맹세하지만 어느날 둘이 헤어져 넷이 행복하자며 등을 돌리면 영원한 맹세는 휴지 조각이 되고 만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결혼을 중시하고, 이혼을 부정했다. 그러나 서구문화가 득세하면서 결혼관과 이혼관에 변화가 생겼다. 지금부터 78년 전인 1931년의 결혼과 이혼 상황은 어떻했을까. 당시 조선총독부 통계를 인용하면 결혼 총건수는 18만4598명으로 조선인 18만2715건, 일본인 1864건, 외국인 19건이었다. 도별로는 경기도가 1만8862건으로 가장 많고 함경북도가 6405건으로 가장 적었다. 신랑의 나이는 조선인의 경우 20~24세가 5만9324명으로 가장 많고 60세 이상 238명이 가장 적었다. 일본인의 경우 25~29세가 815명으로 가장 많고 60세 이상 1명이 가장 적었다. 신부 나이는 조선인의 경우 15~19세가 10만1947명으로 가장 많고, 60세 이상 31명으로 가장 적었다. 일본인의 경우 20~24세가 992명으로 가장 많고 60세 이상 1명이 가장 적었다. 60세 이상 결혼자가 초혼인지 재혼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에도 늦장가와 늦시집은 있었다. 같은해의 이혼 총건수는 8093건으로 조선인 7896명, 일본인 195명, 외국인 2명이었다. 도별로는 전라남도 1115건, 경기도 1103건, 평안남도 1010건으로 1천건이 넘었고 함경북도의 66건이 가장 적었다. 이혼 남성의 나이는 조선인의 경우 25~29세가 2274명으로 가장 많고 17미만 62명이 가장 적었다. 여성의 나이는 조선인의 경우 20~24세가 2696명으로 가장 많고 60세 이상 18명이 가장 적었다. 일본인은 20~24세가 65명으로 가장 많고 40~45세가 4명으로 가장 적었다. 지금 같으면 아직 결혼을 꿈도 꾸지 않을 25~30세 나이 때 이혼이 많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같은 현상은 조혼(早婚)탓이었다. 당시 조선인의 신랑 17세 미만, 신부15세 미만 결혼자는 남성 1만2479명, 여성은 8923명이나 됐다. 도별로는 남성은 경상북도가 2149명, 여성은 황해도가 1129명으로 가장 많았다. 결혼과 이혼 풍속도의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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