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592년(선조25) 4월에 시작해 6년 7개월 동안 계속된 일본군의 조선 침략을 ‘임진왜란’으로 부르고 있다. 그런데 최근 ‘왜란’이란 용어가 합당한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이 있다. 왜란은 일본인이 난동을 부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난동은 전쟁과 다르다.
도요토미히데요시의 일본 군대가 처들어 왔을 때 조선은 국운을 걸고 싸웠다. 따라서 이는 전쟁이었지 일본인의 단순한 난동이 아니였다. 그리고 임진(壬辰) 또는 정유(丁酉) 따위의 간지(干支)를 붙혀 부르는 것도 옳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두 난을 ‘7년전쟁’, ‘조일전쟁’, ‘도요토미히데요시의 제1·2차 침략전쟁’ 등으로 부르고는 있지만 교과서나 역사서는 임진왜란 또는 정유재란으로 기술하고 있어서 전쟁보다는 난동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다만 북한에서는 임진왜란이라 하지 않고 ‘임진조국전쟁’이라는 말로 일본의 침략에 맞서 조국의 안전을 지켜냈다는 뜻을 강조하고 있다. 전쟁이란 용어를 쓴 점에서는 우리가 쓰고 있는 왜란이나 재란보다 현실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조국’이란 용어가 학술적으로 합당한지, 그리고 객관성이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다. 이미 417년 전에 있었던 국치적(國恥的) 사건이기는 하지만 역사란 용어 하나 하나에 의미가 부여되고, 용어 구사에 따라 역사 내용이 달라질 수도 있는 만큼 뒤늦은 감은 없지 않지만 임진과 정유란에 대한 명침을 명확히 정립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임진란 때 영의정으로 전쟁을 지휘했던 유성룡은 일본의 민족성에 대하여 “사람됨은 잘 변하고 간사하여 기쁠 때는 사람 같고 성이 나면 짐승 같아 한쪽으로는 가만히 보내어 노략잘하면서 한쪽으론 국교를 핑계삼아 왕래하므로 우리나라가 엄하게 방비해야한다.” 고 말한 바 있다. 아득한 옛 일인데다 아픈 상처라는 이유로 덮어 두거나 아무렇게나 놔둘 수 없는 것이 역사다. 역사 학자들이 고민 해주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