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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단상] 최규하 前 대통령 회고록을 보며

역사적 평가는 뒤로하고
서민적인 그를 기억한다

 

흔히 정치인들은 자신이 한 일을 “역사가 평가할 것.” 이라고 거창하게 미완(未完)의 문제를 종결(終結)시키는 나쁜 버릇이 있다.

이 말을 풀이 해 보면 지금은 동조(同調) 받지 못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나의 뜻과 행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것이다.”는 이런 뜻이다.

대부분 역사의 평가를 자기 변명(辨明)에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어쨌든 현재의 자기 입장을 변명하는 데는 더 할 수 없이 좋은 표현이다. 매국노 이완용이도 한일합방에 서명한 뒤 역사 운운하면서 똑같은 말을 했다고 하는데 스스로 위로를 하는 데도 적격(適格)이리라….

역사란 무엇인가?

이제는 고전이 된 E.H 카의 책이다. 아마 대학시절 이 책을 접하지 않은 사람은 인문과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 낙인이 찍힐 정도였다. E.H 카의 책은 시간이 흘러도 피를 뜨겁게 하는 묘한 매력과 흡인력(吸引力)을 가지고 있다.

역사는 항상 새로이 쓰여 진다./역사는 때와 장소,사람에 따라 달리 해석된다./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할 수 있다./객관적 역사란 어찌 보면 주관적 서술이다.

어떻게 한 권의 책을 간단히 요약할 수 있겠냐만 대강 이렇다. 화두 같은 말을 우리에게 남기고 떠난 분이 최규하 전 대통령이다.

얼마전 최규하 전 대통령에 관한 책이 ‘자네 출세했네’라는 제목으로 발간됐다.저자 권영민씨는 1970년부터(당시 최대통령은 외무부 장관으로 재직) 인연을 맺어 대통령이 된 뒤 부속실 비서관으로 근무했는데 독일대사를 마지막으로 외무부를 떠난 직업공무원이다.

최규하 대통령 만큼 평가가 다른 사람이 드물다.

부정적인 평가는 최주사라고 별칭이 붙을 만큼 소심하고 꼼꼼한 사람,결국 자신의 안위를 위해 소위 신군부에게 정권(政權)을 빼앗겼던(받친) 사람. 그러나 긍정적인 평가는 서민적이며 평생을 외교관으로 ‘공선사후(公先私後) 몸소 실천한 분’ 그리고 근검절약이 몸에 밴 분, 인사문제에 공명정대한 분으로 평가한다.

이 책의 저자도 서문에 “세간의 평이야 어떻든 내가 가까이서 봐 온 최규하 대통령 내·외분은 향기로운 분이다. 정말로 가까이서 모실 수 있는 것을 개인적으로 커다란 영광이요, 기쁨이었다.”고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1976년 최규하 국무총리는 회의석상에서 ‘부인 조심, 비서 조심, 자녀 조심’이란 말로 공직자들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우리에게도 이웃집 할머니같이 친근한 홍기여사가 그 배경을 설명했는데 책 원문을 그대로 옮기면 『우리나라는 급속한 산업화의 영향으로 사람들의 가치관도 크게 변하고 있다. 물질만능주의와 출세지향주의로 바뀌게 된 것이다. 공무원들은 빠른 출세를 위해 영향력 있는 공직자나 그가족 또는 휘하 비서들에게 손을 뻗치는 경우가 빈번하다. 또 산업가동은 관공서의 허가가 필요한 일을 추진할 때 담당 공무원은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 까지 뇌물공세를 퍼붓기 때문에 총리께서 공직자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 ‘부인조심, 비서조심, 자녀조심’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도 필요했겠지만 요즈음 더욱 절실한 경고(警告)라고 할 수 있다. 요즘은 형님 조심으로 바꿔도 될 것 같고….

대한민국 헌정사에 직업공무원으로 평생 정당에 가입하지 않고 과장,국장,차관,장관,국무총리,어찌됐든 국가원수에 오른 인물은 최규하 대통령이 유일하다. 철저한 자기 관리가 없으면 불가능 할 것이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몇십년이 지난 조상님 산소도 풍수지리를 보고 옮기는 판인데 본인은 전혀 생각지도 않았는데 대통령이 됐으니, 이것은 운명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국무총리 시절인 1979년 오일쇼크 때 석탄공사 장성탄광 막장에 들어가 격려하면서 “당신들의 노고를 잊지 않기 위해 평생 연탄을 때겠다”고 약속한 뒤 죽을 때까지 연탄 보일러를 고집했다고 한다.

법정에 강제구인(强制拘引)을 당하면서까지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꼭 해야만 하는가?”,“그렇지 않다.” 온갖 오해를 받으면서도 침묵으로 일관하다 끝내 세상을 떠났다.

역사란 세월이 필요하다. 아직은 그 시기가 덜 무르익었다.

내 죽은 후에 그런 평가를 해줄 사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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