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 상황을 핑계로 어떤 변명을 하든지 대중들은 지도자들에게 일관 된 삶을 요구한다.
일제 강점기 때 이광수,최남선 같은 분들이 개별적 분야에서 능력이나 업적을 최고로 인정받지만 총체적 평가는 변절(變節)을 이유로 ‘위대한 문학가’나 ‘영웅적 선비’의 반열(班列)에서는 제외되곤 한다.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최영 장군의 말씀이던가?
영웅(英雄)이든지,지사(志士)이든지 가장 으뜸으로 꼽는 덕목이 청빈(淸貧)이다. 물욕(物慾)이 없는 지도자 일 것이다. 청암(靑巖) 송건호(宋建鎬) 선생을 기억하시리라. 그는 유신시절 동아일보가 광고탄압을 받을 때 과감하게 편집국장 자리를 박차고 나와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의장을 지내고,박종철 사건을 세상에 알린 ‘말’지를 창간하고,한겨레신문 초대 사장과 회장을 지낸 분이다.
아마 한겨레신문의 논조에 동조하든 반대하든 송건호 선생을 평생 청빈하고 자기 뜻을 꺾지 않는 일관된 삶을 살았다는데 동의하지 않는 분은 없을 것이다. 얼마 전 참으로 귀한 선물을 송 선생 유족으로부터 받았다.
「나는 역사의 길을 걷고 싶다」(한길사 출판,정지아 지음)는 책이다.
부제(副題)는 참언론인 송건호의 생각과 실천.
개인적인 깊은 인연이 있어서 돌아가셨다는 부음(訃音)을 듣고 현대아산병원에 조문(弔文)을 간 적이 있는데 아련하게 떠오르는 사연이 있다.
내가 살던 곳에 시국강연 차 들렀는데,연락이 제대로 닿지 않아 아파트 경비실에서 점퍼 차림으로 앉아 계셨다. 체구와 차림새,머리까지 은발이었으니 참으로 수수하고 전형적인 촌로(村老)의 모습이었다. 황급히 달려가서 강연장소로 안내 하려고 했으나 경비실의 아저씨가 “두 사람 자장면 시켜 놓았으니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다. 다른 요리하나 없이 자장면 한 그릇을 후딱 비운 뒤 일어나면서 경비 아저씨와 두 손을 한참동안 잡더니 마치 십년지기(十年知己)처럼 작별이 길었다.
“송 형이라고 했지요. 꼭 다음에 들르시면 소주 한 잔 합시다.”
당대의 유명한 송건호를 결코 몰랐던 것이다. 더구나 당신 스스로 이야기 했을리는 만무하고... 20년이나 나이 차가 났음에도 나를 부를 때 호칭은 항상 김 형이었다. 그토록 겸손한 분이다. 잠시후 강연장에서 사자후(獅子吼)를 토하는데 조금전 다소곳한 송 선생이 아니었다. 그 서슬 퍼렇던 시절에 엄청난 이야기를 겁도 없이 함부로(?)하는 것 아닌가.
송 선생은 지사(志士)였지 투사(鬪士)는 아니었다.
평소 성품이 부드러운 사람처럼 보였을 뿐이지,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일은 망설임이 없고 그 만큼 자신에게도 떳떳한 사람이다. 스스로 이렇게 말씀하셨다.(원문을 그대로 옮긴다.)
『퇴직후 무엇보다도 생활에 대한 걱정이 제일 앞섰다. 자식 여섯 모두 대학에서 초등학교까지 다니고 있었다. 학비가 가장 많이 들 때였다. 장차 생활대책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가 이런 생각,저런 생각을 하면 밤에 잠이 오질 않았다.생활에 대한 불안이 끊임없이 엄습해 왔다.
어느 날 갑자기 두려워지곤 했다. 이럴 때면 나는 미친듯 서오릉 쪽으로 달려갔다. 숨이 차 헉헉 하면서도 두려움은 떠나지 않았다.』
김정렬 전 비서실장의 회고다.
『송건호氏가 화장실에 소변을 보러 갔는데,박 대통령도 거의 동시에 화장실에 가서 나란히 생리현상을 해결했다. 박 대통령이 송 선생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에 “송 선생,내가 무엇 한 가지 도와주고 싶은데 말씀 해 보세요.”,“각하,요즘 지방에 공장이 엄청나게 세워졌다고 하는데 저는 아직 가보지 못했습니다. 한번 보고 싶습니다.”』
너무도 놀라운, 욕심 없는 순진한 부탁이다.
세계일주도 아니고 국내산업시찰을 부탁했다고 하니 말이다.
그런데도 주위에서는 대쪽같은 성품을 감안 한다면 그 나마라도 부탁한 게 놀랍다고 했다.
자주 다니던 유명한 봉희설렁탕집 주인이 사회저명인사라고 갈 때마다 음료수를 대접하자 그나마 부담이 된다며 아예 발길을 끊었다고 한다.
참으로 대단한 분이 곁에 있다가 떠난 사실을 우리는 모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