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도를 대변할 수 있는 키워드 하나를 적으라면 단연코 ‘위기’일 것이다. 우리나라 10대 그룹 총수들의 신년사에 ‘위기’라는 말이 32회나 등장했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는 ‘변화’와 ‘성장’, ‘경쟁력’ 등이었다고 한다. 이를 통하여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가 변화와 경쟁력을 통한 성장으로 총체적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 교육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 각 도처에서는 오늘의 경제 위기 상황을 경고하는 목소리만큼 동일한 수준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수많은 아우성들이 들려오고 있다. 정치, 경제, 교육, 사회 모든 영역에서 각 정파마다 각 계층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저마다 각기 다른 고통을 호소하면서 나름대로의 대안들을 내어 놓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가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친기업 정책을 실시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국가적인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행하려고 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중소기업들이 소외되고 저소득층들의 볼멘소리가 외면당하고 있는 것은 가슴 아픈 현실이다. 또한 정치판의 여야 의원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싸움질이나 하고 있는데 이것도 이해가 된다. 교육의 영역에서도 이런 상황이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
가만히 들어보면 모두가 설득력이 있다. 극단의 위기 상황에서는 일단 내가 살고 봐야 하니까 남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문제는 정부가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하는 것이 마땅하고 이를 위해 국가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면 현 정부는 진실로 이런 노력을 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진지하게 던져 본다.
사람들이 교육을 하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이다. 현재 우리의 먹고 사는 문제가 위기상황이라면 교육을 통해서 먹고 사는 문제가 생각대로 되지 않을 정도로 위기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 극복을 위해서 우리 교육이 변화해야 하고 또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교육에 경쟁논리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부의 입장과 경쟁논리로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대해서 극렬하게 반대하는 세력들 사이의 간격은 위기 상황의 깊이와 비례한다고 하겠다. 이것이 급기야 교육에 있어서의 이념 대립으로 번지게 되었고 지금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까지 악화된 것이 아닌가?
우리 교육의 현실을 보면 참으로 답답하기 짝이 없다. 정부는 교육의 의무를 이상하게도 취학 의무로 이해해서 왜 모든 국민들로 하여금 일정한 나이가 되면 가기 싫은 학교에도 반드시 가게 해야만 하는지 또 원치 않는 교육을 억지로 받게 하는지, 공교육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왜 그렇게 억누르고 공교육의 정책 틀에 가두어 놓으려는지 이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반대로 공교육에 대해 불만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교육 이념을 마치 절대선인 것처럼 고집하면서 공교육을 자신들의 교육이념에 맞추려고 왜 그렇게 애를 쓰는지 솔직히 이해하기 힘든다. 정부에게는 국가적 차원에서 모든 국민들을 교육할 책임이 있고 동시에 공교육으로서 반드시 수행해야 할 역할과 과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정부는 공교육 받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그토록 바라는 교육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교육의 장을 법적으로 열어주었으면 한다. 그렇지 않아도 대안교육을 하는 사람들은 남들처럼 교육세를 꼬박 내는데도 불구하고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교육의 혜택은커녕 오히려 미인가 대안학교에서 비싼 교육비를 지불하면서 어렵사리 고육을 받고 있을 정도로 억울하기 짝이 없는데 말이다.
교육도 다원화 시대에 걸맞게 변화되어야 하지 않는가? 공교육은 대안교육을 경계할 필요가 없고, 대안교육은 공교육을 비난할 필요도 없다. 대안교육이 확대된다고 해서 공교육이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우에 불과하다. 오히려 대안교육이 발달하면 할수록 공교육이 더욱 더 건강해진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의 시기에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공교육과 대안교육이 상생의 길에서 함께 어깨동무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