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적 아주,아주 하찮은 일이 오랫동안 상세히 기억 될 때가 있다.
초등학교 입학식때 입고 온 어머니의 쪽빛 두루마기와 목도리 색깔은 뚜렷하면서, 며칠 전 만나 명함을 교환하고 반주(飯酒)까지 곁들인 저녁식사까지 함께 한 사람의 이름은 물론 성씨까지 흐릿할 때가 많다.
참으로 세월이란 이처럼 사람을 쓸쓸하게 만든다.
어릴 때 생생한 추억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내게 바나나의 추억은 지나치리 만큼 또렸하다.
첫 만남은 아마 50년쯤 거슬러 올라간다. 장소는 지금은 의료원이라 불리는 도립병원. 고모 한 분이 입원(당시 맹장(盲腸)은 큰 수술이었다.)했었는데 병실까지 기억이 난다.
306호! 얇고 노르스름한 커튼 색까지 더듬을 수 있다. 창가에 이제까지 못보던 희한하게 생긴 과일이 놓여 있었다.(사실 과일인지도 몰랐다.) 호기심 많은 유년(幼年)인지라 뚫어지게 보고 있었는데 “이름은 바나나, 열대지방 과일인데 참으로 비싸고 귀하단다.” 이런 설명과 함께 반쪽을 얻어 먹었다. 더 먹고 싶다는 사인(Sign)을 계속 보냈지만 전혀 반응이 없었다. 참으로 야속(野俗)한 감정이 오래갔다. 그 뒤 이유없이 병원에 가자고 보챘고…. 홍시보다는 덜 부드럽고 달콤함도 모자랐지만 향기와 함께 느껴지는 특유한 그 맛은 정말 별미였다.
물론 이튿날부터 동무들에게 “너 바나나 먹어 봤어?” 이런 질문형식을 빌어 자랑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한참후 어른이 된 뒤에도 줄기차게 바나나를 식탐(食貪)이라 할 만큼 즐겨 찾았다.
그리고 잔칫집을 방문했을 때 바나나가 있으면 “이집 법방(法方)이 괜찮구나” 그렇지 않으면 “뭐 이래!” 참으로 유치한 기준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바나나가 엄청 싸졌다. 따라서 시장이나 노점에 먼지를 뒤집어 쓰고 진열된 바나나를 볼 때 마다 바나나의 신세가 처연(悽然)했다. 귀하게 대접받던 어느 큰 가문의 종녀(宗女)가 평범 이하의 몰골로 나타났을 때 실망감,그리고 측은함. 하여간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매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얼마전 보도에 따르면 바나나가 서민들 입에서 점점 멀어져 간다고 한다. 가격이 일년 전 보다 40% 정도 올랐기 때문이라고 한다.(13Kg 바나나가 1만4000원에 팔리던 게 요즘은 2만원 가까이 올랐단다.) 가장 큰 원인은 지난해부터 오른 환률 탓도 있지만 웃지못할 사연도 있다. 엉뚱하게도 일본에서 바나나의 과소비 때문이란다.
일본의 한 약사 부부가 아침 식사대용으로 바나나 두 세 개와 물을 함께 먹고 점심과 저녁은 평소대로 했는데 ‘체중감량에 큰 효과를 얻었다’는 경험담이 인터넷에 올려졌는데 대단한 관심을 끌었단다. 결국은 바나나 다이어트라 불리고 출판사의 욕심으로 책으로 만들어졌는데 효과를 봤다고 비만(肥滿) 여성들이 너도나도 바나나를 찾아 일본에서 엄청나게 수입하기 때문이란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부족하니 당연히 값은 오를 수 밖에 없다.
고등학교 3학년 입시를 앞두고 양파가 사람 머리를 맑게 해 준다는 희한한 정보를 입수한 어머니가 밥상 앞에서 눈을 부릅뜨고 양파를 권하던 경험이 있다.
양파를 먹고 난 뒤 그 지독함이란…. 그 뒤 양파를 멀리 한 건 당연했다. 라면에는 김치가 제맛인 것 처럼 자장면에는 양파가 제격이지만 오랫동안 단무지로 대신했다. 그러나 참으로 습관이란 묘한 것 이어서 그렇게 싫던 양파가 그리워지기까지 했다. 옛날 과수원집 아이들이 윷놀이나 무슨 내기를 하면 사과를 걸었다. “저 친구들 질리지도 않는지” 하고 의문스러워 했는데 결국 맛도 습관화 돼 인이 밴 것이다.
건강에 대한 바람은 지극히 보편적인 인간의 욕망이다. 요즘은 블루베리가 항암(抗癌)에 효과가 있다고 백화점 가장 목 좋은 곳에서 턱하니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한다.
맞선 보는 자리에서 나이 서른에 몸무게 74Kg인 나를 장모가 “아이고,정말 건실하게 생겼네.”하면서 지금 기준으로 엄청난 비만임에도 높은 평점을 줬는데…. 이젠 비만은 국가에서 관리할 정도니 세월에 따라 기준도 변하기 마련인가 보다.
어쨌든 한 때 사랑에 빠졌던 바나나 값이 올라 시민들과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니….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바나나가 불쌍했지만, 이젠 참으로 밉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