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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단상] 애모(愛慕)가 되고, 애무(愛撫)도 되고

아버지의 ‘황혼의 블루스’
사연있는 노래한곡 있기마련

 

30년전 쯤 되었을 것이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생신(生辰).

강원도 속초의 어느 콘도에 직계 가족들만 모여서 조촐한 축하모임을 가졌다. 식사후 여흥(餘興)을 가졌는데 자형 한 분이 소주병에 숟가락을 넣어 마이크 흉내를 내면서 자! 지금부터 동남아 공연을 방금 마치고 돌아오신 가수 김 아무개의 노래를 듣겠습니다.(아무개는 아버지였다)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쿵짜자작짝!”

당시 대부분 어른들이 그랫듯이 아버지는 과묵(寡默)하고 평소 좀 엄하신 편이었다. 일순 계면쩍은 표정으로 노래는 뭐...

지금은 사돈끼리도 바닷가에서 수영복을 입고 맥주를 마시는 세태(世態)지만,아마 시집온지 얼마 안 된 며느리가 좀 켕기셨나보다. 부자지간이야 한계가 있지만 옹서지간(翁壻之間-장인과 사위) 관계는 때와 장소에 따라 그런 격식을 스스럼 없이 넘나들 수 있다.

결국은 눈을 지그시 감더니 “황혼이 질 때면 생각나는 그 사람...그 추억이 그리워서 눈물짓네 목이 메어 불러보는 당신의 그 이름...”

한때 최고 인기곡으로 불렸던 이미자의 황혼의 블루스를 낮은 목소리로 숙연(肅然)히 부르셨다.

결코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노래였다. 1절을 마치시고 황급히 자리를 피하는 게 아닌가. 그러자 우리는 반드시 저 노래는 어머니 말고 또 다른 사연이 있다고 낄낄댔다.

한참이 돼도 돌아오시질 않기에 찾으러 나가보니 사위(四圍)가 깜깜해서 모습으로 찾긴 힘들었지만,파라솔 밑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여 가보니 아버지가 웅크리고 앉아서 소리죽여 울고 계셨다. 나중에 방으로 모셨는데 짧은 시간에 눈이 시뻘겋고 퉁퉁 부어 있었다.

“돌아가신 형님 생각이 나서...”

결국 황혼이 질 때 마다 생각나는 사람은 백부(伯父),아버지의 형님이셨다.

조실부모(早失父母)한 아버지에게 큰아버지는 아버지이며 어머니,그리고 연인(戀人)이셨다.

일화(逸話)가 있다.

기차를 내려 마을까지는 거리가 멀어 큰아버지가 말을 몰고 마중을 갔는데,서로가 말을 타라고 양보를 하시다 끝내는 두 분이 함께 말고삐를 쥐고 걸어 오셨다고 한다. 돌아가신 뒤...좋은 일만 있으면 큰아버지 산소에 가서 보고를 하고 돌아와서는 기쁨을 함께 나누지 못한 걸 아쉬워 하면서 모두 형님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고 한다. 참 유별나고 본받아야 할 우애(友愛)라고 지금까지 주위에서 이야기 한다.

이제는 고인(故人)이 된 김수환 추기경께서 애모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방송에서 봤었다.

“그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늘은 울고 싶어라 세월에 강 넘어 우리 사랑은...당신은 나의 남자여”

요즘 재혼 결혼상담소에 혼담이 오가는 당사자들이 노래방에 들르면 반드시 애모를 부르라고 가르친다고 한다.

특히 “당신은 나의 남자여” 이 소절은 눈을 지그시 감고 상대방의 가슴을 향해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콕 찌르면서 부르면 성사될 확률이

굉장히 높아진다고 한다.

이 노래를 히트시킨 여가수의 창법(唱法)도 매우 독특하고 허스키 해 소절마다 꺾어서 부르고 흐느적거려 좀 끈적끈적한 느낌을 주는데

노래방에서 나도 그 흉내를 냈더니 ‘애모’가 아닌 ‘애무’라고 친구들이 타박했다.

어쨌든 애모든 애무든 이 노래를 김수환 추기경이 해맑은 표정으로 부르면 성가(聖歌)로 변한다.

노래가 끝나면 수녀님들이 그대가 누구냐고 장난기있게 물으면 추기경님께서 그냥 ‘씩’ 하고 웃음으로 흘려 보냈다고 한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대가 하느님,천주님,부모님이란 걸 알 사람은 다 안다.

그렇다,노래마다 사연(事緣)이 있다. 그러나 사랑 노래라고 일방적으로 이성(異性)이라고 하기는 인생이란 제각기 마음속에 묻어 둔 사연이 너무 많기 때문에 함부로 단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깊은 산속에 흐르는 깨끗한 물도 독사가 마시면 독(毒)이 되지만,목마른 사람에게는 감로수(甘露水)가 된다.

추기경께서 부르면 성가가 되는 노래를, 내가 부르면 애무가 되고 보니,내 입장에서 보면 뒤통수가 뜨끈거릴 지경이고 부끄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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