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5년 전쯤 강원랜드에 초청을 받은 적이 있다. 일확천금의 허황된 꿈을 부나방처럼 좇는 그런 곳이 아니고, 힘들고 고달픈 일상을 잠시 접어 두고 사막의 오아시스 역할을 하는 곳이란 걸 홍보하기 위함이렷다.
강원랜드는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 있다. 사북읍이 어떤 곳인가? 사북사태(舍北事態)라고 불릴 만큼 시끄러웠던 조그마한 시골 마을이다. 노조위원장이 회사측과 비밀리에 임금협상을 합의, 흥분한 노조원들이 위원장 부인의 옷을 찢어 전깃줄로 묶고 폭행하던 사진이 아직도 뇌리에서 가시지 않는 1980년대 민주화 과정의 어두운 기억을 남긴 도시였다.
10월 초 강원도 날씨는 예상스럽지 않았다. 예측 못한 추위에 몸도 마음도 떨렸다. 눈에 띄는 것 모두 외국 풍물보다 더욱 생소(生疎)했다. 거리는 온통 붉고 푸른 네온으로, 아무리 심지가 굳은 사람도 평상심이 일상적 도덕심에서 탈출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전당포, 노래방, 모텔, 고깃집, 안마시술소...
한 마디로 ‘소돔과 고모라’가 연상됐다.
카뱅크(Car Bank)란 희한한 이름도 눈에 띄었다. 직역(直譯)하면 자동차은행. 벤츠, BMW 등 고급차가 먼지를 뽀얗게 먹은 채 주차장은 만원이었다.
돈이 떨어지면 자동차 맡기고 돈을 빌리는 곳이란다. 식당은 예사롭게 카지노의 칩이 현금처럼 통용되고, 어찌됐던 도시는 활기찼다.
그러나 못 볼 것도 많았다. 건물 계단은 저마다 유복(有福)했던 과거를 추억삼을 만한 사람들이 신문지 몇 장으로 이불을 대신하고...
아직은 장래에 대한 꿈을 간직해야 할 청년들이 이기심에 찬 눈매와 요상한 옷차림, 한 때 부모들의 자랑거리가 되고 남았을 미모의 여인네들의 그늘진 모습하며 세상사 다 그런 거지 뭐...
이렇게 대범스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이건 타락의 절정, 지나쳤다. 호텔 엘리베이터를 탔으나 요지부동이었다. 키를 넣어야 움직이는 줄도 모르고...
VIP룸이란 곳은 멋지게 기른 수염에 터번을 쓴 아랍 부호들이, 안내를 하던 강원랜드 직원은 카지노가 달러를 벌어 들이는데 얼마나 유익(有益)한 산업인지 열심히 설명을 했지만, 그래 그것도 애국의 한 방편(方便)이니, 씁쓸한 이해를 해주었다.
커피와 콜라 하여간 음료수 종류는 모두 무료였다. 결국은 피눈물의 댓가이니 아무리 공짜인들 그것이 무슨 대수일까? 호텔 로비는 과거엔 귀부인이었을 그런 여인네가 몇 시간 꼼짝 않고 휴대전화를 조물딱 거리고 있다. “저 여자 아는 사람들에게 돈 빌리려고 하루 종일 전화질입니다.”
강원랜드 개장 이래 35명이 자살했다는 통계가 있다. 내가 아는 청년은 인상도 좋고 아래 위로 예의도 잘 갖추고 그럴듯한 대학도 졸업하고, 회사에서도 그런대로 인정을 받았다.
이 친구 이제 남은 일이라곤 좋은 처녀를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것밖에 없다. 최소한의 행복은 보장된 삶이었다. 그런데 회사돈을 아주 묘한 방법으로 빼돌리고 그래서는 안 될 가까운 사람에게 돈을 빌리고 해서는 안 될 일을 서슴없이 했다.
결코 오래 갈 수 없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끌어 들였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을까?
회사에서 내동댕이쳐지고, 그의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될는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소문은 ‘바다이야기’에서 시작된 도박 탓이란다.
중독성(中毒性)은 사람에게 지극히 해로운 일이다. 도박은 가장 강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을 피폐(疲弊)시킨다. 옛날에 혼인을 할때는 삼대(三代)를 살핀다고 했다. 지금의 인사청문회처럼 낙마시키기 위해 집중적으로 무슨 까탈을 찾는 게 아니고 혹시 윗대에 노름에 빠진 어른들은 없었는지... 노름은 무서운 후천적유전(後天的遺傳)이라고 했다. 세상살이가 꽃길만 쫙 깔려 있을까? 그 고민을 잠시 잊자고 자신을 내팽겨치는 어리석음이야... 어쨌든 그 친구 얼굴이 눈에 밟힌다.
국민연금공단(國民年金公團)이 강원랜드에 1천100억원을 투자해 보유한 지분이 3위라고 한다. 사회적 책임을 져야하는 곳이 국민연금공단 같은 곳 아닌가?
그날의 초대는 신기일색(新奇一色)이었지만, 친절과는 별개로 부정적인 인상만 갖고 돌아 왔다. 하물며 어느 청년의 말로(末路)가 눈에 훤하게 보이는데 도박은 정말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