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같은 후대 문헌 기록에는 단편적인 모습이 전하고 있으나, 이것만으로는 구체적 실상을 짐작하기는 대단히 어려웠다.
예컨대 신라 왕경에는 하위 행정 단위로 360방(坊.삼국사기) 혹은 1천360방(삼국유사)이 있었다고 하지만, 방이 어떤 모습으로 조성돼 있는 지를 알 수가 없었다.
이를 구명하기 위한 고고학적 발굴 작업이 지난 87년 이래 2002년까지 15년 동안 실시됐다. 조사 대상 지역은 황룡사 동쪽과 인접한 곳.
이곳에서는 도로 중심축 기준으로 남북 172.5m, 동서 167.5m인 井자 형태의 정사각형(전체 면적 약 8천평)에 가까운 담장 같은 구획이 확인됐다.
도판편과 본문편 두 권으로 최근에 나온 「신라왕경-발굴조사보고Ⅰ」은 연인원 7만명이 투입된 이곳 발굴 성과를 정리한 것이다.
특대판인 보고서 본문편(총 731쪽)은 조사내용을 비롯해 사진 622장, 도면 272장을 수록했고, 도판편(377쪽)에는 유물 1천725점에 대한 도면.탁본.사진이 실렸다.
보고서는 이 사각형 구획이 문헌에 기록된 신라 왕경의 하위 단위인 1개 방(坊)으로 보고 있다.
이곳에서는 일통삼한(一統三韓) 직후 신라시대에서 고려 초기에 걸치는 시기의 유적과 유물이 확인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적어도 4차례 이상 개보수가 있었다.
조사 결과 이곳에서는 동서남북 사방으로 폭 15m 이상의 다져 만든 도로가 외곽을 두르고 있으며, 그 표면에는 수레바퀴 흔적이 발견됐다.
또 도로와 평행하게 폭 3-4m 안팎의 대형 및 중형 배수로가 설치되어 있었다.
방(坊) 내부에는 사잇담장을 두고 공간을 분할하면서 1평-50여평에 이르는 대형.중형.소형 건물과 그에 부속된 건물이 축조됐다. 또 소규모 사원과, 많은 우물이 확인되기도 했다.
조사단은 "이러한 조사결과는 신라왕경이 계획적인 도시설계를 통해 발전하였음을 알려 주고 있으며, 문헌에 나타난 신라인의 도시생활상과 더불어 향후 연구를 통해 가호(家戶)별 인구를 추정해 당시 왕경 전체의 거주인구 규모를 규명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