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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독립운동가 김경천 장군

일제강점기, 민족운동가이자 교육자

국가보훈처는 국권회복과 조국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한 김경천(金擎天·1888∼1942) 장군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1888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 장군은 1909년 한국인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 육군사관학교 에 입학, 1919년 동경 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에 영향을 받아 조국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심하고 이청천과 함께 만주로 망명한다.
만주 안동현에서 대한독립청년단에 가입한 장군은 같은해 8월 안병찬 등과 함께 한·중공수동맹을 결성할 것을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한다.
1920년 초, 무기구입을 위해 북간도를 거쳐 노령 연해주로 이동한 장군은 블라디보스톡의 삼림지대인 수청지역의 창해청년단 총사령관으로 수청지역의 마적들을 대대적으로 소탕해 한인사회의 안정에 크게 기여한다. 이 명성으로 '김 장군'이란 칭호를 얻는다.
1921년 봄, 장군은 수청 인근의 올가에서 조직된 통합 빨치산부대의 책임자가 되어 백군과 치열한 전투를 전개하고 다우지미의 수청 고려의병대 사령관으로 백군과 싸우며 마적 소탕에도 힘을 기울인다.
연이은 승리로 장군은 1922년 7월 연해주 혁명군사위원회로부터 뽀시에트 군사구역 조선 빨치산 사령관으로 임명된다. 그해 10월에는 러시아와 중국 국경지방 무장단체들로 조직된 고려혁명군 동부사령관에 오른다.
1922년 말 일본군이 철수한 뒤 소련 적군이 동맹군인 한인독립군에 대해 무장해제를 요구하자 장군은 1923년 2월 상해 국민대표회의에 참석, 창조파의 일원으로 활약한다.
1924년 3월 블라디보스톡에 한족군인구락부를 조직, 1926년에는 윤해, 김규식 등과 민족당주비회를 조직하고 만년에는 블라디보스톡의 극동고려사범대학에서 군사학과 일본어를 가르친다.
장군은 1937년 한인들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를 앞두고 '간첩죄'로 체포돼 온갖 고초를 겪은 끝에 1942년 1월 소련의 북동쪽 꼬미자치소비에트공화국의 유배지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장군은 스탈린 사후인 1959년 2월 19일에 복권됐다.
정부는 장군의 공훈을 기려 1998년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독립기념관과 서대문독립공원 역사관에서는 6월 한달동안 장군의 뜻과 공적을 기리기 위해 별도의 전시실을 마련, 관련자료와 사진을 전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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