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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머무는 곳마다 선조의 지혜에 흠뻑

21세기 들어 인구 1천만이 넘는 거대 도시로 성장한 경기도.
한해 평균 30∼40만 명 정도의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경기도는 현재, 인구의 50% 가량이 타지인들이라고 한다. 이는 경기도가 매년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동시에, 이 지역이 갖고 있는 특징인 개방성·역동성을 말해주는 일례다.
그렇다면, 경기도가 어떻게 이 같은 성격을 큰 특징으로 지니게 됐을까. 경기지역 곳곳에 흐르고 있는 이 기운은 도대체 무엇이길래...
발길 머무는 곳마다 면면히 흐르는 京畿道의 근본 사상을 찾아,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잘 닦여진 6번 국도를 타고 팔당댐을 지나 약 6km쯤 가다보면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다다른다. 골목길을 돌아 고즈넉한 마을안으로 들어서면 시대를 초월한 큰 스승의 생가와 묘소가 눈앞에 서 있다.
나라 경제의 성장과 과학기술의 중흥을 꽤했던 다산 정약용(1762∼1836). 경기도가 고향인 다산은 남양주에서 실학을 학문으로 완성했다.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의 저서를 남겨 정치와 경제적인 부흥을 꾀하고, 거중기와 녹로, 배다리를 발명한 다산은 대표적 실학자다. 그리고 오늘날의 경기도가 실학정신을 계승하게 만든 기폭제다.
정약용뿐이던가. 유몽인, 이수광, 함백겸 등 17세기 초의 대표적 실학 선구자들이 경기도에 기반을 두고 있다. 반계 유형원, 성호 이익, 다산에 이르기까지 경세치용학(經世致用學)을 중시하는 광주 '안산학파', 하곡 정제두, 원교 이광사, 석천 신작에 이르는 '강화학파'도 경기도에 터를 두고 실학을 발전시켜 나갔다.
경기지역 곳곳에는 이를 뒷받침해줄 여러 유적들이 남아있다. 정약용과 그의 형 정약전의 생가와 묘가 있는 남양주는 물론이고, 성호학파를 일군 성호 이익의 묘가 안산에 위치해 있다. 그의 제자이며, 실학을 연구한 안정복이 후학을 양성한 생가와 묘터는 광주에, 이익의 학통을 이은 실학자 권암과 권철신, 권일신의 생가는 양평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에외도 양주, 용인, 화성, 과천, 가평, 평택, 파주, 여주, 의정부, 연천 등 경기지역 곳곳에 실학정신을 계승할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이들이 일구어온 실사구시 이론은 정치, 경제, 생활, 문화 등 실생활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 대표적 실학건축물이 바로 수원화성이다.
수원과 경기도, 나아가 대한민국이 문화적인 도시로, 국가로 성장하게 만든 수원화성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그 축조방식이나 쓰임새에 있어 가치가 높다.
조선의 절정기였던 정조대왕 시절(1796), 정약용이 거중기를 이용해 설계했으리라 추측되는 화성은 당시 실질적이고도 실용적인 시설물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는 증거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어떻게 하면 행궁을 보위하면서 주민들의 생업을 보살필 것인가가 축성 계획의 기본이었다는 것. 또 동서남북 성문의 배치에서 볼 수 있듯이 주민들의 생활과 보호를 위해 시설물들을 가장 적당한 위치에 설치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바로 실학이 화성 축조의 기본사상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실학사상이 경기도에서 부흥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경기도라는 지역이 갖는 '개방성', '역동성'을 든다.
인구 1천만명이 넘는 경기도는 현재 50% 이상이 타지인들이며, 매년 30∼40만명 가량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이는 경기도가 갖는 개방성을 뒷받침해주는 일례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삼국시대부터도 이러한 특성을 찾아볼 수 있다. 삼국시대 백제가 한강유역에 도읍을 정한 이후, 삼국은 한강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각축을 벌였다. 이후 분열된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은 919년 수도를 송악으로 정하고 골품제의 폐쇄성을 극복, 보다 개방적이고 통합성을 갖춘 중세적 성격의 고대 국가 중심지가 되었다.
조선왕조에 들어와 권력을 잡은 사대부를 중심으로 명분이나 이론을 중시하는 성리학이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18세기인 당시는 현실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경제제도와 계급질서의 붕괴 등 산적한 사회 문제로 인해 조선의 지식인들은 어떤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던 시절이었다.
젊은 지식인들은 현실의 변화 앞에서 뭔가 돌파구를 찾아야 했고, 그 희망은 우선 청나라를 통해 들어오는 새로운 문물에서 엿볼 수 있었다. 그것은 서양의 과학기술과 청나라의 실용적인 문화였다.
그러나 현재 경기도가 이 실학사상의 정신을 얼마나 계승하고 있을까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쉽게 대답할 수 없다.
동서남북을 가로지르는 수원화성 5.5km의 성곽을 따라 오백년전 나라를 지키려했던 선인들의 진보적 함성이 성곽을 타고 메아리친다.
경기지방을 중심으로 면면히 흐르는 실사구시의 정신. 조만간 다가올 통일시대에 경기도가 그 중심에 우뚝 설 수 있는 디딤돌로 작용하길 기대해본다.
정수영 기자 jsy@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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