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나는 처음으로 주례를 섰다. 그동안에도 몇 차례 제자들이나 직원, 또는 친지들이 주례를 부탁해 온 적이 있지만, 항상 정중하게 거절하곤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여성 주례가 드물다 보니, 공연히 주목을 받게 될 경우 신혼부부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과연 모범적인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가, 새로 한 가정을 이루게 될 인생의 후배들에게 과연 어떻게 조언해 주어야 할까 등으로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게다가 작년에 하루 평균 347쌍이 이혼을 했다는 통계청의 발표가 있을 만큼 결혼의 의미가 예전처럼 한번 결혼하면 좋으나, 싫으나,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영속되는 것도 아닌 세태에서 선선히 주례를 할 용기와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신랑 신부 모두가 특별한 인연이 있어 딱히 거절하기 어려웠다. 신부는 우리 대학의 직원이고, 신랑은 내가 철도공사 부사장 시절 공사 1기 공채생으로 채용되어 한 직장에서 지낸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례를 맡고 보니, 새삼 요즘의 결혼 세태가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꼈다. 우선 결혼 예식부터 많이 달라졌다. 사실 결혼 예식은 두 사람이 한 가정을 이뤄 영원히 함께할 것을 약속하는 의식으로 주례의 역할도 이러한 예식을 총체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엄숙하고도 막중한 임무를 띠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보통 결혼식 자체가 30여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데다, 결혼 예식도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기보다는, 이벤트 중심으로 진지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다.
결혼식장마다 다르지만, 비누방울 속에서 신랑신부가 마차를 타고 등장하는가 하면, 화려한 축가와 즐거운 파티 위주의 예식이 진행되어 결혼식 자체가 드라마처럼 연출된다. 주례의 역할도 제한적이고 주례사에 대한 가장 중요한 주의사항도 무조건 길면 안되고, 신랑 신부와 하객을 지루하게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 결혼식 주례는 남편과 나의 공동의 은사님께서 해주셨는데, 여러 좋은 말씀 중에서도 특히 남편에게 부인의 재능을 살릴 수 있도록 외조를 아끼지 말라는 당부를 여러 차례 하신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나는 주례사를 준비하면서 어떻게 하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해 보았다. 무엇보다 먼저 항상 서로 배려하고,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먼저 양보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배려와 양보가 말처럼 쉽지 않을뿐더러, 특히 부부 간에는 오히려 더 자존심을 앞세우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러나 평생을 함께 하는 부부 간의 진짜 사랑은 상대방의 단점마저도 이해하고 존중하는 배려와 양보에서 온다고 생각된다.
또 한 가지는 너무 사회생활에만 전념하여 가정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하는 점이다. 본가와 처가, 친정과 시댁으로 가족이 두 배가 되었으니 부모님에 대한 효도와 형제·자매들과도 우애를 지켜 나가기 위해서도 두 배 이상의 노력을 해야만 가정이 행복해진다.
특히 요즘 젊은이들은 자녀를 가지는데 부담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자녀는 다복한 가정을 이루는 핵심이다. 또한 행복한 가정생활은 원만한 사회생활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서는 흔히들 부부를 일심동체라고 하지만, 사실은 이심이체라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이 말은 상대방이 무조건 나와 똑같기를 바라서는 안 되고, 부부라 할지라도 서로 다른 개체인 만큼 상대의 차이와 개성, 나아가서 그 사람만의 세계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다.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도 굳건한 침목을 통해 한 몸으로 이어져 있는 선로처럼 부부는 각자 자기가 원하는 생활을 잘 해나가면서도, 사랑과 신뢰라는 굳건한 침목으로 합쳐져 기쁜 일이나 어려운 일을 늘 함께 하며, 둘이 함께 정한 인생의 목적지를 향해 끝없이 발전해 나간다면 성공적인 결혼생활이 되지 않을까?
부부가 함께 살다 보면 의견이 다를 때도 많고, 즐거움이나 기쁨보다는 슬픔과 어려움이 더 많을 수도 있지만, 결혼식날 서로에게 품었던 사랑과 열망을 잊지 않는다면 함께 살아가는 행복을 잘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