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14-16세기에는 부계와 모계를 차별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국사학과 이종서(李鍾書. 36) 박사가 14-16세기 각종 문헌과 고문서에 나타난 조선시대 친족용어를 분석한 연구결과 부계-모계를 차별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씨는 이같은 연구성과를 최근 서울대 국사학과 박사학위 심사통과 논문으로 제출한데 이어 그 중 일부를 최근 발간된 계간 역사학 잡지 「역사비평」 63호에 「14세기 이후 친족용어의 변천과 친족관계」라는 논문으로 발표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여자형제를 각기 구별해 부르는 '고모'와 '이모' 호칭의 예를 보면 '숙모'(叔母)라고만 호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경향은 한자어만이 아니라 순한국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고모'와 '이모'의 반대편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는 '숙부'와 '외숙부'의 경우도 역시'숙부'(叔父)로 통일돼 있었다.
이는 '나'(我)를 기준으로 한 아랫세대에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조카는 생(甥)과 질(姪)로 구분되지만 이 당시에는 한가지 용어로 지칭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이씨는 "부계와 비부계를 차별하지 않은 친족의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친족 관념은 재산 분배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다시 말해, 친족 개념에서 부계와 모계를 차별하지 않았으므로 재산 분배에서 아들 딸을 구별할 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혈족 관념이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분기가 일어남으로써 모계에 대한 차별이 시작됐을까?
이씨에 따르면 적어도 친족용어에서는 양반 사족층의 경우 16세기 후반에 이미 분화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다가 17세기 중반이면 현재와 비슷한 남성 부계 중심사회로 변동돼 갔다는 것이다.
조선왕조가 임진왜란-병자호란의 양란을 겪고 난 직후인 17세기 중반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한국사의 획기로 생각되고 있다. 정치사상사적으로는 중국 일변도 소위 사대사상에서 벗어나 조선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소중화주의가 강렬하게 대두되는 한편, 문중(門中)과 종중(宗中)이 등장했고, 족보 편찬이 바야흐로 붐을 이루기 시작했다. 사회인류학적 측면에서는 부계 중심주의가 관철되면서 모계는 친족 관념에서 현저하게 축출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최재석 당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17세기 중반 이전에는 재산 분배에 있어 아들 딸을 차별하지 않았다는 한국 사회인류학사상 기념비적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이번 이종서씨 논문은 이같은 최 교수 이래 정설로 굳어지다시피 하고 있는 주장을 '친족용어'라는 새로운 소재를 통해 실증적으로 뒷받침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