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행록 (愚行錄)
누쿠이 도로이 글|이기웅 옮김 |비채|328쪽|1만원.
우행록(愚行錄)은 말 그대로 ‘바보 같은 짓을 하는 자들의 이야기’이다. 지인들의 증언이 계속됨에 따라 처음에는 완벽하게 보였던 피해자 부부가 사실은 철없는 행각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왔다는 것이 밝혀지고, 독자들은 첫 번째 ‘우행’을 깨닫는다. 증인들의 목소리에 동조해 부부를 어느 정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성급한 독자라면 ‘결국 그 부부는 죽어도 안타까울 것 없는 인물들이었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전의 달인 누쿠니 도쿠로 작가가 단지 피해자를 단죄하기 위해 이처럼 번거로운 방법을 선택했을까. 다시한번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피해자 부부의 인간성은 딱히 좋다고 할 수 없지만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여서 대부분의 지인들은 ‘그렇지만 그 사람은 상당히 괜찮은 사람이었다’라는 식으로 최종 평가를 내리고 있다. 게다가 마지막에 밝혀지는 살인범의 정체와 범행의도가 너무나 의외롭기에 독자는 마지막 페이지를 읽은 후에도 쉽게 책을 덮지 못한 채 작가의 의중을 다시 처음부터 헤아려 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중에도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자신의 잣대로 재고,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며 살아간다.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기에 그 과정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누쿠이 도쿠로는 미스터리 작가이면서도 트릭이나 기교에 치중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게감 있는 진정성을 무기로 인간 심리의 본질적인 면을 탐구하는 작가이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을 읽다보면 단순히 흥미로 사건의 흔적을 쫓는 대신, 하나의 사건에 복잡하게 얽힌 다양한 사람들의 심리와 상황의 추이를 쫓게 된다. 고뇌하는 작가 누쿠이 도쿠로는 이번 작품을 통해 어떤 기교보다 뛰어난 현실감과 짜릿한 스릴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