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그럴 듯한 사람과 그저 그런 사람, 두 부류로 나눈다면, 그 기준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계획성을 꼽을 수 있다. 계획성이란 치밀함과 강한 의지력이 함께해야만 완성 될 수 있다.
아침에 하루를, 월요일 아침에 일주일 일을 구상하는 부지런함.
어디 쉬울까?
그러나 대부분이 계획이 어긋났을 때 후회와 함께하는 낭패스러움, 나는 왜 이럴까? 결국은 자신을 비하(卑下)하게끔 만든다.
금요일 퇴근 시간 무렵, 포켓용 교양서적에서 눈에 띄는 문구(文句)를 발견했다.
‘건강한 삶을 원한다면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기쁨의 효과를 기대하지 말고, 가끔은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것 보다 소파에 할 일 없이 뒹굴어 보라. 우선은 한심스러울지 몰라도, 얻는 것이 분명 있다’. 무계획(無計劃)이 상책(上策)이란 말이다.
다행이 휴일 결혼식에 가야 할 일정도 없고 병문안이나 하다못해 냉장고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건 다 있는지라….
그래, 한 번 빈둥대보자고 큰(?) 계획을 세웠다.
토요일 아침, 신문 보는데 두 시간 정도 소비했지만 슬슬 안달이 났다.
오래 못 만났던 군대 친구나 연락해 볼까? 목욕탕에 가서 시간을 죽일까? 하여간 여러 가지 궁리가 왔다 갔다 했는데 이때, 가수 이승철 인터뷰 기사가 눈에 띄었다.
가수 이승철.....? 잘 몰랐다.
수염을 기르고 밤낮없이 선글라스를 낀 모습, 한때 대마초니 뭐니 나쁜 추억도 있고, 솔직히 비호감이었다.
이승철은 이렇게 말했다.
“제 단점은 귀가 얇다는 것, 남의 말을 잘 믿는다는 것, 곡을 만들면 아무나에게 들려줍니다. 식당 배달 아저씨가 이 노래 좋다고 해서, 타이틀곡으로 선정한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싱어송 라이터라고 꼭 자기 노래만 고집하는 사람도 있는데 누가 작곡하고 작사했던 간에 내가 부르면 내 노래입니다. 손에 든 것을 꼭 쥐고 있으면 안 되잖아요. 될 수 있으면 놓으려고 하죠”.
내가 알고 있던 것은 껍데기였나 보다. 글도 쉬운 말로 쓴 것은 상수(上手)라고 했다. 어려운 말을 이처럼 쉽게 조근 거리다니 당장 비호감에서 호감으로 바뀌었다. 며칠을 월드컵 중계방송 보느라 눈을 혹사했으니, 오늘 귀는 즐겁게 하리라.
반바지 차림으로 나섰다. 이른 시간인지라 청소를 하는 점원을 불러 다짜고짜 이승철 CD를 요구하니, 좀 이상한 눈으로 봤다. 발라드풍의 노래를 좋아할 나이는 지났는데…. 대강 이런 뜻일 것이다.
타이틀곡은 “사랑 참 어렵다.”
목소리는 약간 허스키했는데 얼마나 감미롭던지…….
가사를 소개한다.
사랑이 정말 있기는 한 거니
내 맘을 다줘도 왜 항상 떠나가는지
다시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아
사랑 참 어렵네요.
.사랑 참 어렵다 너무 힘들다
있는 그대로 날 바라보면 괜찮을 텐데
사랑 참 어렵다 많이 아프다
.과거를 더듬어 보니 딱 맞는 말이다. 사랑 참으로 쉬운 대목이 없었다. 고비마다 어려웠다. 웃기지 마라, 사랑 그까짓 것이 어려울 것이 무언가? 나는 쉽더라. 이렇게 단언(斷言)할 사람이 과연 몇 있을까?
혹시 이 노래로 마이크 잡으면 멋있다는 소리를 들을 것 같아, 따라 불렀다. 고음과 저음에서는 어이없이 삑사리(음이탈)가 나는지라 포기를 하고, 백수의 표본 메뉴인 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오후 서너 시간을 이승철의 노래와 함께 보냈다.
(이처럼 급히 빠져버린 열성 팬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가수 자신도 엄청나게 기쁠 것이다.)
인터뷰 내용을 스크랩을 하고 기사 내용을 찬찬히 읽으니 취미는 아이들 키우는 육아(育兒)란다.
더욱 잘나보였다. 그리고 체력과 폐활량을 키우려고 하루에 2-3시간 운동을 한단다.
하기야, 어디 정상에 오른다는 것이 쉬운 일일까?
콘서트를 하면 환경 미화원에서 그룹 회장 그리고 10代에서 70代까지 폭 넓은 층이 팬이란다.
예술적이며 철저히 대중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만원 남짓 투자한 금액에 비해 하루를 너무 윤기(潤氣) 나게 보냈다. 그러나 이처럼 하염없는 빈둥거림에 방치해둔 친구들에게 은근히 부아가 났다.
그날 빈둥댐으로서 얻은 것이 이승철의 노래 하나만 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