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1 (일)

  • 구름많음동두천 5.4℃
  • 흐림강릉 6.4℃
  • 구름많음서울 8.4℃
  • 맑음대전 6.5℃
  • 흐림대구 7.3℃
  • 흐림울산 8.1℃
  • 맑음광주 8.3℃
  • 흐림부산 8.6℃
  • 맑음고창 5.5℃
  • 구름많음제주 10.7℃
  • 구름많음강화 3.2℃
  • 구름많음보은 5.8℃
  • 맑음금산 6.2℃
  • 맑음강진군 5.0℃
  • 흐림경주시 5.7℃
  • 흐림거제 8.6℃
기상청 제공

화제의 책, '아이를 닮으려는 화가 이중섭'

"중섭은 소 그림으로 민족의 울분을 드러냈고, 천진 난만한 아이들 그림으로 헤어진 가족들과 다시 만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의 생애는 불우했지만, 그가 꾸는 꿈은 밝고 명랑했습니다."
불우한 천재, '이중섭'. 이미 이름만으로도 하나의 전설이 돼 버린 화가다. 최근 출판사 '나무숲'이 시리즈물로 내놓고 있는 '어린이미술관'의 '이중섭' 편에 글을 쓴 국립현대미술관 오광수 관장은 중섭이 '아이를 닮으려는 화가'였다고 강조한다.
식민지나 다름없던 일제시대 우리민족을 상징하는 '황소'를 주로 다룬 작가로 알려진 중섭은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에게나 알려져 있고, 그의 그림은 동경의 대상이 된다. 특히 교과서에 실린 중섭의 '황소' 그림은 한민족을 대표하는 상징적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오관장은 "바로 이 점이 중섭의 미술 세계를 제대로 알리기 어려운 이유"라고 말한다.
"식민지시대에 놓인 당시 민족의 울분을 '황소'로 풀어내고자 한 것은 중섭의 미술세계 전반기의 특징이지요. 1950년 한국전쟁 이후 가족과 떨어져 살면서부터 그의 작품세계는 주로 '아이'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중섭의 작품세계에서 주된 특징은 바로 '순수성'이라고 봐야할 겁니다."
일본 유학당시 일본 여성과의 사랑에 성공한 중섭은 이후 한국에 돌아와 함경도쪽에 가정을 꾸리고 산다. 그러나 전쟁과 동시에 피난길에 오른 그는 두 아들과 부인을 일본으로 보내게 되고 혼자 제주도 등지에서 기거하며 그림을 그린다.
당시의 중섭에 작품들은 전반기와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일본 유학 당시인 초창기 서양화를 배운 중섭은 강한 '선'을 특징으로 그림을 그린다. 연필, 붓 등을 이용해 황소, 물고기, 사람 등을 강한 '선'으로 표현한 것이다. 특히 민족의 한과 울분을 힘찬 '황소'로 나타낸다.
그러나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된 후반기 그의 작품세계는 '아이'를 주 소재로 하며, 그 속에는 동심에 세계가 그대로 반영된다. 제주 서귀포에 머물 당시 '서귀포의 환상', '게와 씨름하는 아이들' '그리운 제주도 풍경' '춤추는 가족' 등 다수의 작품을 남긴다.
그 즈음의 작품들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 순수한 동심의 세계가 잘 표현돼 있으며, 자신의 자전적 내용도 보여진다.
경제적으로 힘들게 생활할 무렵, 버린 담뱃갑 속 은종이 위에 못과 송곳 등을 꾹꾹 눌러 선을 그리고 그 위에 물감을 칠하고 닦아 내 그림을 그린 '은지화'는 중섭의 창작성과 천재성을 그대로 보여준 일례다.
그러나 불우한 이 천재화가는 세상을 등질 때까지 가족을 만나지 못한다. 1956년 그의 작품 '돌아오지 않는 강'은 가족과 만날 수 없는 안타까움을 작품화했다.
오 관장은 중섭의 작품세계에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순수성'이라고 새삼 강조한다.
"중섭은 때묻지 않은 영혼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그의 삶과 예술을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것은 인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잃지 않은 이 순수성 때문이지요."
이제 우리곁에 중섭은 없지만, 그의 예술은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남아 따뜻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정수영 기자 jsy@kgnews.co.kr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