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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7년 남한으로 망명해 10일 타계한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비서(이하 황장엽)가 14일 대전 국립 현충원에 안장됐다. 주체사상을 이론적으로 확립하고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세차례에 걸쳐 11년이나 지낸 그는 당의 국제담당 비서로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외교문제에 있어 고문과도 같은 대단한 존재였다. 그러나 김일성 사후 김정일 독재체제에 실망한 그는 이 땅에 전쟁을 막기 위한 명분을 내세워 남한을 선택했고, 공교롭게도 북한 노동당 창건기념일에 생을 마감했다.

황장엽은 아들 하나와 두 딸을 뒀는데 북한에서는 그의 자녀들을 가리켜 ‘하늘의 별을 땄다’며 부러워했다.

특히 그의 아내를 두고는 ‘박승옥이보다 더 좋은 팔자는 없다’고 할 정도였다. 황장엽이 모스크바 국립대 철학과에 유학할 때 박승옥은 모스크바 의대 학생이었다. 박승옥의 팔자가 하늘을 찌르게 된 것은 김정일의 딸 설송의 개인교사가 되면서 부터다. 설송은 부상급(차관급) 고위간부 자녀들만 다니는 남산학교에 다녀야 했으나 들어가지 않았다. 김일성의 후처인 김성애의 남동생 아들도 입학하게 돼있어 ‘원가지네’가 ‘곁가지네’와 어울려 공부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덕분에 박승옥은 외국문도서 출판사 원고심사원이란 직책을 새로 받고, 사장보다 더 좋은 방에서 일을 하게 됐다. 위세가 하늘을 찌르던 그녀는 벤츠를 타고 다녔다. 설송이의 학습지도도 잘하고, 어린이용 영어와 프랑스어 교재까지 출판하자 김정일은 ‘인민기자’란 칭호까지 내렸다.

이렇게 하늘 높은 줄 모르던 박승옥의 위세는 남편이 서울로 넘어오면서 허무하게 끝이 난다.

그녀는 남편의 망명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다고 한다. 아들과 딸들도 수용소로 끌려가 숙청된 것으로 전해진다.

황장엽에 앞서 1992년 남한으로 온 김현식(가명) 전 평양사범대 교수는 저서인 ‘나는 21세기 이념의 유목민’에서 황장엽의 좌우명을 ‘개인의 생명보다 더 귀중한 가족의 생명, 그보다 더 귀중한 민족의 생명’이라고 소개했다. 그런 그였기에 북에서의 모든 걸 다 버리고 ‘조국을 위한’ 망명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이해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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