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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은 빠져도 못자국은 남더라"

현기언 성장소설 '못자리'

2003년도에 태어난 아이들은 이 다음 어른이 되어 자신들의 어린 시절을 어떻게 기억할까. 컴퓨터를 비롯한 첨단과학이 생활화돼 있고, 인공적이며 인위적인 모습들로 가득한 그런 삶. 아마도 이와 비슷한 기억이 아닐까.
추억이란 사람들 개개인마다 다른 모양, 다른 색깔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특히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은 세대별, 시대별로 아주 판이한 차이를 보여준다.
어린시절을 '전쟁'이라는 기억들로 가득 채워야 한 세대들에게 그 시절은 아프지만 끌어안아야 할 상처로 남아있다. 반면 보릿고개를 갓 넘은 40∼50대 장년층에게 있어 그 시절은 배고프고 힘들지만 따뜻함이 서려 있는 그런 날들이었으리라.
4·3 사건을 비롯한 제주민의 역사와 삶을 문학으로 승화시켜온 소설가 현길언(63·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최근 내놓은 소설 '못자국'은 그래서 더욱 가슴 시리다.

'못자국’(계수나무 刊. 이우범 그림)은 현길언 교수가 일제와 6·25 동란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의 격변기를 배경으로 한 3부작 성장소설(동화)의 마지막권이다.
이 소설은 현씨의 자전적인 성장소설로, 전쟁으로 얼룩진 자신의 유년시절을 어린 세철이와 주변 인물들을 통해 되짚어보고 있다.
제주도에 사는 세철이는 여덟살에 일제 침략 전쟁을 겪는다(1권 전쟁놀이). 이어 열한살 때 제주 4·3 사건으로 또 다른 아픔을 견뎌야 했으며(2권 그때 나는 열한살이었다), 이제 6·25 전쟁속에서 열네살의 심한 성장의 고통을 앓고 있다(3권 못자국).
3권 못자국에서는 전쟁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지는 않지만, 전쟁에 대한 미움이 확고해져 가는 소년의 모습은 더 자세히 묘사됐다.
4·3이라는 격변을 겪고 6학년이 된 세철이. 그런데 세철이가 사는 제주도에 전쟁 고아들이 전학을 온다. 성산포에 미군 군함이 피난민 일단과 아이들을 내려 놓은 것. 그 중에 키가 훌쩍 큰 성규, 다부진 영탁이, 하얀 얼굴의 유원이가 세철이반으로 전학 온다.
미군의 오인 폭격으로 부모를 잃은 유원이 등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진 아이들이지만 이들은 말쑥한 차림새에 자존심이 여간 센 게 아니다. 세철, 석호, 명환이 같은 제주도 아이들은 좀처럼 기죽지 않는 피난민 아이들이 얄밉기만 하다.
특히 경쟁심이 발동한 세철이는 공부를 더 잘 해보려고 담임선생님 집에서 시험문제를 훔쳐보고, 어머니 돈을 슬쩍 훔치기도 한다. 이 사실을 안 형은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헛간 기둥에 쇠못을 박으라고 벌을 준다.
갈수록 늘어나는 못들. 형은 착한 일을 하면 하나씩 못을 뽑아라고 했지만, 성질 급한 세철이는 어느날 못을 모두 뽑아 버린다. 그러나 못을 뽑아 버려도 못자국은 남았다. 급기야 세철이는 연장통에서 자귀를 꺼내 못자국을 파내기 시작한다. 물론 자국은 더 커져 버린다.
그렇다면 세철이의 모습으로 대변되는 현씨의 유년시절은 어떤 기억일까. 전쟁이란 역사적 사건을 땔래야 땔 수 없는 그의 유년시절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못자국과도 같다.
'못은 빠져도 못자국은 남더라'라고 중얼대는 저자의 말처럼 전쟁은 지나갔어도 아픈 기억은 지울 수 없다.
정수영 기자 jsy@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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