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1 (일)

  • 맑음동두천 6.4℃
  • 흐림강릉 6.4℃
  • 맑음서울 8.5℃
  • 맑음대전 7.0℃
  • 흐림대구 7.4℃
  • 흐림울산 7.8℃
  • 맑음광주 9.2℃
  • 흐림부산 8.1℃
  • 맑음고창 6.7℃
  • 구름많음제주 10.3℃
  • 구름많음강화 3.2℃
  • 맑음보은 5.6℃
  • 맑음금산 6.7℃
  • 맑음강진군 4.9℃
  • 흐림경주시 6.1℃
  • 흐림거제 8.5℃
기상청 제공
한국이 낳은 불세출의 예술가 최승희는 1930년대 중반 브뤼셀에서 열린 무용경연대회에서 당대 유럽 예술계를 풍미하던 표현주의 무용의 원조 마리 비그만과 나란히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었다. 식민치하에서 국제활동이 거의 전무했던 당시 조선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오늘날 백남준이나 정명훈의 활약상을 볼 때보다 훨씬 더 감격해야 할 일이다.
최승희 이후 공백이 너무 길었지만, 다행히 요즘 한국 예술가들의 수준은 가히 세계적이어서 국제무대에서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들의 자랑스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었는데, 이처럼 높아진 위상을 견지하고 더욱 발전시켜줄 국제수준의 행사가 없다는 점이다. 남의 나라에서 열리는 갖가지 콩쿠르를 다닐 때마다 늘 마음 한 구석이 편치 않았다.
자국의 예술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국제교류의 창구가 되는 행사라면 축제와 콩쿠르가 제격인데, 우리에게는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그나마 축제로는 통영국제음악제가 급속한 성장을 예고하고 있고 무용.연극에도 몇 가지 있지만, 콩쿠르는 전무하다. 동아일보사가 96, 97년 두 차례 국제음악콩쿠르를 했다가 중단했고, 광주에서 국제발레경연대회가 열린 적이 있기는 하다.
그런 마당에 서울에 국제콩쿠르가 생긴다는 것은 낭보가 아닐 수 없었다(연합뉴스 6월 16일 보도). 서울국제문화교류회(회장 이강숙, 운영위원장 허영일)가 내년부터 무용/음악을 번갈아 개최하게 될 서울국제무용.음악콩쿠르는 그런 갈증을 충분히 풀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앞두고 4일 오후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국제콩쿠르 현황과 서울국제콩쿠르 방향모색' 심포지엄의 열기가 대단했던 것은 우리 예술인들의 기대가 얼마나 큰가를 단적으로 반영하는 것이었다. 꼬박 5시간이 걸렸지만 자리를 뜬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브루스 마크스 USA 국제발레콩쿠르 위원장과 도리스 라이너-알미 헬싱키 콩쿠르 명예위원장, 이이지마 타카시 나고야(名古屋)콩쿠르 위원장 등 권위있는 콩쿠르 책임자들이 갖가지 충고와 제안을 쏟아냈고, 국내 발제자와 토의자들도 저마다 의견을 분출했다.
심사의 공정성에 대한 강조에서부터 형편이 어려운 참가자들에게 경비를 지원하자는 제안까지 글자 그대로 백인백출이어서, 이 모든 의견을 수렴할 수만 있다면 서울 국제콩쿠르는 아마도 세계 최고의 행사가 될 터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순수한 예술교류의 마당에 자칫 국수주의적 발언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콩쿠르가 국력의 확인이며 때로는 과시이기도 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현존 콩쿠르들 가운데 유명한 것들은 대개 냉전시대 동서경쟁의 부산물로 생겨난 것들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차이코프스키 음악콩쿠르는 소련과 동유럽의 예술적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만든 것이고(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이 거기서 우승하고 귀국했을 때 미국인들은 자존심을 회복했다며 얼마나 기뻐했던가!), 현존하는 최고(最古) 무용경연대회인 불가리아 바르나 콩쿠르도 같은 동기에서 60년대 중반 탄생했다.
이 대회들에 대해 미국과 서유럽은 참가 여부를 놓고 고민도 많이 했고, 나중에는 "우리도 콩쿠르를 만들자"는 결론에 도달한다. USA 콩쿠르는 설치법안이 상원까지 통과한 '국가적 행사'임을 자랑하는데, 미국같은 나라에서 발레대회를 국가행사로 만든 것은 대소(對蘇) 경쟁심이 얼마나 심했는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인 것이다.
우리도 기왕에 만들기로 한 것, 단순히 무용.음악 기술경쟁의 장에 머물지 말고 좀더 차원높은 행사, 이를테면 예술교류를 통한 세계평화의 실현같은 고귀한 이상을 품고 출범하기를 바란다. 콩쿠르들이 갈수록 기술경쟁과 정치력 다툼으로 기울어가는 속에서 우리만이라도 순수 고품격 행사를 만들고 지켜간다면, 그것도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 또하나의 길이요, 실상은 국력의 깊이이기도 할 터이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