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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독일이 가장 사랑하는 정치인 슈미트

 

세계 각국에서 정치혐오증이 대세인 세태에서, 90이 넘은 나이에 아이돌 스타보다도 많은 사랑과 인기를 누리는 정치인이 있다면 믿어지는가? 독일의 정치가 헬무트 슈미트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올해 93세인 슈미트는, 지금은 야당인 사민당(SPD)정치인으로 1974-1982년 독일 수상을 역임했으니 수상직을 떠난지 30여년이 됐고, 1985년에 연방의회 의원직도 물러났으니, 정계를 떠난지 25년이 됐지만, 여전히 독일 주요 언론 매체의 집중 조명을 받는 것은 물론, 수년 째 각종 여론 조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정치인으로 꼽히고 있다.

 

2009년 그의 나이 92세에는 인기 아이돌 스타들을 2, 3위로 밀어내고 독일 국민들이 뽑은 ‘가장 쿨(cool)한 남성’이 됐는가 하면, 지난 10월의 여론조사에서는 ‘독일의 양심’을 대표하는 인물로 선정됐다. 경제위기나 글로벌 정치 등에 관한 어렵고 딱딱한 슈미트의 저서들은 스테디셀러 목록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만큼 독일인들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뜻일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세가 높은 아데나워나 브란트, 독일통일의 아버지라 불리는 콜이나 독일 최초의 여성 수상인 현 메르켈 수상 등을 멀찌감치 앞지르는 정치인 슈미트의 인기 비결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선 슈미트는 많은 직업정치인들과는 달리 실력가로 정평이 나있다. 대학에서 전공한 경제학 지식과 경험에서 우러나온 실용주의적 혜안을 겸비했고, 수상이 되기 전에 국방장관, 재무장관, 경제장관, 환경장관과 외무장관까지 두루 역임하면서, 능력을 충분히 입증했다. 슈미트가 스타 정치인으로 떠오른 것 자체가 그가 보여준 위기관리능력 때문이었다. 1962년 대홍수로 함부르그시 전체가 물에 잠겼을 때, 시 내무장관이던 슈미트는 법·규정에 어긋남에도 독일군과 NATO군까지 동원해 신속하고 효율적인 이재민 구출 및 구호작업을 펼쳐 주민들의 큰 신망을 얻으며 일약 국민적 스타가 됐다.

 

수상 시절에는 1차 오일쇼크로 인한 경제위기를 극복해 냈고, 일명 적군파로 지칭되던 대학생 출신 테러리스트들과의 전쟁에서도 단호하고도 강경한 대응으로 테러조직의 뿌리를 뽑아버림으로써,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수호자로서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 줄 수 있다는 강력한 믿음을 심어 줬다. 글로벌 금융위기, 대규모 실업사태 등 위기의 시대에 슈미트와 같은 지도자를 선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또한 요즘처럼 상식과 도덕이 실종된 시대에, 근면성, 진솔함, 공정성, 북부독일인 특유의 블랙 유머까지, 슈미트는 7~80년대 황금기 독일인들의 덕목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전 생애에 걸쳐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줄만한 어떠한 부정이나 스캔들에도 휘말리지 않은 슈미트의 인생 역정 자체도 어린 시절 전쟁의 참상과 가난을 경험하고, 근면과 성실로 ‘라인강의 기적’을 일궈낸 동세대 독일인들의 전형이다.

 

게다가 슈미트는 데스탱 프랑스 대통령, 키신저 미 국무장관과 G5를 창설하는 등 세계 정치를 움직이는 인물이 된 후에도 독일 중산층이라는 자신의 뿌리를 잃지 않았다는 점에서 국민의 존경을 받는 것 같다. 슈미트 부부는 지금도 1962년부터 살던 함부르그의 소박한 연립주택에서 살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부자가 되기를 바란 적이 없다’며 강연과 책을 써 벌어들인 백만 유로를 모두 기부했다.

슈미트의 소신주의는 너무나 유명하다. 금연지정된 공공장소에서도 유유히 담배를 피우는 소신 흡연주의자이며, 정년연장, 노조권력축소, 독일의 환경론자들이 극렬하게 반대하는 원전 예찬 등 슈미트는 현직에 있을 때나 지금이나 소위 당론 때문에 자제하거나, 또는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거나 명성을 위해 포퓰리즘적 발언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다. 타협하지 않는 촌철살인 때문에 독설가라는 말도 듣지만, 슈미트의 언변과 화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나도 독일 유학 시절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조차도 누구나 단숨에 빨려 들어가도록 단순명료하게 표현해내는 슈미트의 직선적인 언변과 카리스마 넘치는 설득력에 매료되곤 했었다.

 

슈미트의 자서전에서 자기 생애에 단 두 번 울었다고 쓴 것을 봤다. 한번은 1945년 서부전선에서 귀향해 부인과 재회했을 때이고 또 한번은 수상 재임시였던 1977년 팔레스타인 테러 조직에 의해 납치된 독일 민간인 85명을 태운 루프트한자 여객기를 소말리아 모가디슈 공항에 임시착륙하도록 유인한 뒤 독일 특수부대를 전격 투입해 단 한명의 희생 없이 인질들을 모두 구출해 냈을 때라고 한다. 그런 그가 평생 사랑했던 그의 부인이 92세로 지난 10월 21일 타계했다.

 

초등학교 때 한반이던 부인과 한결같은 잉꼬부부로 70여년을 해로한 것도 슈미트에 대한 독일 국민의 신뢰를 더욱 깊게 한 요인이리라. 우리나라에서도 국민들의 절대적 사랑과 신뢰를 한 몸에 받는 슈미트 같은 정치인이 나오기를 소망해 본다./최연혜 한국철도대총장·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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